우리는 탄생이라는 역에서 출발했다.
그 역에는 커다란 아픔 후에
엄청난 축복도 함께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내가 왜 가야만 하는지 모른 채
가라니까 갔고 남이 가니까 따라갔다.
간이역을 지나며 봄꽃의 향을 맡았고
조금 큰 역을 지나며 가끼우동을 먹었다.
맛은 있었지만 이름에서 왜놈 냄새가 났다.
어느 날 역사(驛舍)에서 역사(歷史)를 바꾸겠다는
왜놈 냄새나는 역장을 만났다
아직 난 역사(歷史)를 모르는데···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내 뒤에는 스물여덟 살 아들도 기차를 탔고
그 아이도 아직 역사(驛舍)와 역사(歷史)를 모르는데
역장만이 아닌 것 같다.
기차타고 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들이
역사(歷史)를 고치겠다고 분탕질이다.
역사(驛舍)는 어떤 이 인생의 시작이고
어떤 이 인생의 마지막인데
완장 찬 왜놈 냄새나는 사람들이 무섭다.
내 인생의 역에서
코 밑을 간질이는 아주 작은 바람에
온몸 내어 주며 흔들리는
연분홍 코스모스 한 송이면 충분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