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가 익는다
그림자처럼 몰려오는 이튿날의 새벽
터미널에는 여섯 사람의 뒤축에 달라붙은 노랑들이
어수선한 대화들을 새기고 있다
먹빛 미신을 뒤집어쓴 까마귀들이
속이 텅 빈 은행잎들을 열어보인다
반으로 접힌 포춘쿠키를 쪼개며
잘 익은 운세를 확인하던 아버지
<축축하고 어두운 땅바닥을 조심하세요>
나는 전광판 속에서 한 뼘씩 다가오는 미래를 확인하며
불길한 새들의 울음을 뒤축으로 짓이긴다
겨우내 먹을 열매를 숨겨두고 잊어버리는 산짐승들의 습성처럼
가을의 마지막 은행잎을 반으로 쪼개놓고는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곤 하던 아버지
이튿날의 무릎에 달라붙은 노랑들은
열 두 개의 꽃길 앞에 고개 숙이는 바닥의 자세를 기억하고 있다
당신이 하얗게 건너간 만발한 언덕처럼 점점이
떨어져나간 노랑들이 번져 있는 가로수
코 끝에 묻어나는 구린내에서도 발견하고 싶은 점괘가 있고
부서진 쿠키 속에는
이제는 사라진 아버지의 오늘이 잔뜩 매달려 있다
매년 찾아오는 이튿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주인을 찾지 못한 운세들은 내 뒤꿈치에 묻어
발자국마다 흘려 쓴 문장이 되고도 지워지지 않았다
짙어진 점괘처럼 온몸에 스며든 기름 냄새 풍기며 버스에 오른다
창가를 고집하는 건 이내가 엉킨 새벽의 하늘가
뭉글게 떠다니는 구름조각을 떠올리기 때문일까
부서지는 순간에만 발견되는 오늘처럼
기억나지 않는 이름들은 잘 말아서 저곳에 밀어넣던 당신
그가 꿈꾸던 오늘과 내일이
열 두 개의 발바닥에 묻어 바닥에 그려진다
나는 부서진 쿠키 조각들을 쓸어모아
창밖으로 두 손을 내민다
울고 있는 그림자들을 물고 날아오르는 까마귀들
핏기 저문 구름 속에 넣어두었던 두 손에서
희미하게 안개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