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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소설]

나는 바바와 함께 파도가 몰려드는 벵골만의 해안을 스적스적 걷는다는 상상을 하면서 잠들었다. 그러나 자면서 꾼 꿈은 전혀 달랐다. 온천탕 속에 아네이가 누워 있었다. 아네이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솔베이지의 노래 [ 88 ] 냉소

2020. 09. 16 by 김홍성
ⓒ김홍성

몽사는 미련을 버렸는지 몰라도 나는 바바를 따라 가고 싶은 미련이 남았다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 배낭을 벗어 던지면 바바와 같이 걸을 수 있을 거다. 담요나 하나 장만하여 둘둘 말아서 어깨에 걸치고 걷는 거다. 바바가 자는 곳에서 자고, 바바 같은 깡통을 장만하여 바바와 함께 탁발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달 만 고생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될 거다. 나머지 여정은 6개월이든 1년이든 큰 문제가 없을 거다.

 

...... 문제는 내가 물것을 잘 타기 때문에 벌레가 나만 문다는 데 있다. 그것도 견디다 보면 적응이 되지 않겠나. 참는 게 수행이라는 데 내가 가장 못 참는 가려움을 참는 것도 수행일 거다.

 

...... 그러면 코브라는 어쩌고? 코브라도 뱀인데 사람을 일부러 공격하겠는가? 코브라도 궁지에 몰렸을 때 문다. 의심스러운 곳이 나타나면 미리 지팡이로 툭툭 치고 다니면 코브라가 스스로 몸을 피할 거다.

 

......새벽에 바바에게 가서 의논해 보자. 바바가 언제 철수하는지가 중요하다. 내 체류 기한 안에 떠난다면 같이 떠나고, 내 체류기한이 지나서 떠난다면 씨킴 경계 밖에 나가서 기다리면 될 거다.

 

나는 바바와 함께 파도가 몰려드는 벵골만의 해안을 스적스적 걷는다는 상상을 하면서 잠들었다. 그러나 자면서 꾼 꿈은 전혀 달랐다. 온천탕 속에 아네이가 누워 있었다. 아네이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꿈에서 깨보니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이었다. 몽사는 코를 심하게 골고 있었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와 운무에 싸인 온천탕으로 갔다. 겉옷을 벗고 온천탕에 들어앉아 있자니 꿈 생각이 났다. 허탈했다. 기껏 바바를 따라 나선다는 용기를 냈는데 야릇한 꿈을 꾸었으니 비참하기도 했다.   

 

나는 비참한 느낌을 떨치려고 애쓰면서 바바에게 할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뭐라고 운을 뗄 것인가? 

...... 바바, 나는 당신을 따라가고 싶다 ......, 바바여 나는 당신과 함께 당신 스승에게 찾아 가고 싶다 ....... 내가 당신의 여행에 동참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는 중에 사람 소리가 들렸다스님과 취생이었다. 운무에 휩싸인 바위 위에서 둘이 합창하듯 말했다.

잘 주무셨나요?”

, 푹 잤습니다. 아직은 물이 뜨겁습니다. 저는 올라가니까 내려오세요.”

나는 탕에서 일어서서 겉옷을 벗어 둔 건너편 바위로 올라갔다. 전에 바바가 앉아 있던 바위였다. 어느새 날이 밝고 있었다. 운무를 헤치며 걸어오는 부탄 여성들이 보였다.

 

아네이, 체링, 세따, 부탄 여성 세 분이 다 오고 있습니다.”

온다고 했어요. 목욕 같이 하자니까 좋아하더라구요.”

사진을 찍으라고 해야겠군요. 몽사님은 안 일어났나요?”

좀 더 자게 내버려 두세요.”

 

바바에게 가서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가고 싶지 않았다. 바바를 따라 나서겠다는 용기가 날이 밝으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용기는 자기 의지로 내고 붙드는 고집 같은 것이라면 나에게는 용기도 고집도 없었다. 그러면 나에게 뭐가 있었나?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은 나 자신을 향한 냉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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