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김홍성 소설]

솔베이지의 노래 [ 87 ] 농담

2020. 09. 15 by 김홍성

숙소에 돌아와 장 보따리를 풀어 놓고 우리는 언제 떠날 것인가를 의논했다. 내일 아니면 모레가 적당했다. 또한 모레보다는 내일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부탄 여성들은 몹시 서운해 했다. 특히 아네이가 그랬다. 아네이는 그새 정이 들어서 눈물을 글썽였다. 몽사는 바바에게 우리가 떠난다는 말을 전하러 갔다. 취생은 슬퍼하는 부탄 여성들을 위로하고 스님은 말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스님을 거들었다.

 

스님은 감자를 넣은 수제비를 끓였다. 홑이불 수제비라고 했던가? 밀가루 반죽을 홑이불처럼 얇게 밀어서 뜯어 넣었다. 부탄 여성들은 부탄에도 수제비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고 했다. 아네이에게 부탄에서 부르는 음식 이름을 여러 번 물어서 알았는데 잊었다.

 

바바에게 다녀온 몽사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바바도 곧 남인도로 떠난다더라고 말했다. 취생이 데워다 준 수제비를 먹으면서 몽사는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더 했다.

 

바바는 일단 동쪽 해안선을 따라서 도보로 남하할 거라더군요.”

몽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귀로를 추적하는 사진을 계속 찍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네요.”

나는 몽사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취생을 바라보았다. 취생은 준비된 사람처럼 말했다.

 

정 따라가고 싶으면 가셔야지요. 하지만 저는 안 갑니다. 저는 스님과 함께 귀국하고 싶어요. 스님 괜찮죠?”

스님은 대답을 안 했고 몽사는 안색이 잠깐 변했다. 내가 나서야 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후회스러운 말이었다.

 

그럼 내가 몽사 선생과 같이 가면 되겠네요.”

나는 분위기를 바꾸느라고 농담을 던진 것인데 모두들 아연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잘 생각해 보니 내 농담에는 배경이 있다는 오해를 받을 만 했다. 나는 취생이 몽사를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나 또한 무상 스님과 작별해야 될 때가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며칠 전에 몽사가 나에게 바바를 따라 다니는 긴 취재 여행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멋지다고 추진해 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취생이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를 의심했었다.

 

만일 취생이 못 간다면 내가 따라 간다는 생각도 했었다. 나는 딱히 갈 곳이 없는 자가 아니었던가? 인연 따라서 흐르거나 고여 있거나 증발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니 몽사와 함께 바바를 따라 흐르다가 바바의 스승을 만나면 제자로 받아 달라고 간청해 볼 수도 있었다. 바바의 제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싫었다. 바바와는 그냥 길동무이고 싶었다.

 

몽사가 갑자기 껄껄껄 웃지 않았다면 분위기가 아주 나빠질 뻔 했다고 생각된다. 몽사는 웃고 나서 말했다. 농담이었다고, 진짜 농담이었다고. 그래서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농담이었다고, 진짜, 진짜 농담이었다고. 1년이 될 수도 있는 바바의 도보 여정을 우리가 따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얘기라고 하면서 벌레 얘기를 꺼냈다.

 

모기, 벼룩, , 빈대, 진드기, 뱀 같은 해충들을 우리는 못 견딥니다. 병드는 건 둘째 치고 당장 가렵잖아요. 아무리 피가 나게 긁어도 소용없죠. 모르죠, 바바처럼 틈날 때마다 몸에다 재를 바르고 있으면.... 흐흐흐.”

 

스님이 한마디 보태 주었다.

걸식을 하고 노숙을 하면서 긴 도보여행을 하게 될 바바를 따라가며 사진을 찍는다는 건 자가용 승용차가 있어도 어려운 일일 겁니다. 당장은 승낙해도 언제 숨어 버릴지 알 수가 없지요.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귀찮겠어요?”

 

스님의 반응에 힘입어 내가 또 말했다.

모기 물린 데가 가려워서 다들 고생하죠? 여기는 다행히 온천이 있어서 바로 치유가 되지만 가는 데마다 온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몽사도 한 마디 보탰다.

남쪽으로 갈수록 뱀이 걱정될 겁니다. 코프라에게 물리면 즉사한다고 하더군요. 인도에서 사망률 1위의 원인이 뱀이라고 들었는데 맞는 말일 거예요. 괜히 농담해 가지고 분위기 깼네요. 미안합니다.”

 

몽사는 취생의 손을 부여잡고 달랬다.

그대 없이 내가 어디를 가겠소? 난 그대를 위험한 데로 이끌면서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요.”

취생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기분은 좀 풀린 듯 했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