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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그곳에서 빛난다]

나를 지켜내기 위해 떠났던 제주

제주 하늘 아래 무심코 행복함을 느낄 때

2020. 08. 03 by 조연주 여행작가

왜인지는 모르겠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관광지가 있는데 나는 왜 항상 제주로 향하는 걸까. 꽉 막힌 건물 안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을 보내던 직장인 시절,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처음 비행기를 타고 떠난 곳이 제주였다. 오랜 시간 계속 된 비상식적인 상사의 태도와 직장생활에 찌들어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저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어떤 곳인지 궁금함만 안고 떠났던 제주는 모든 것이 감탄의 연속이었다. 꼭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어느 책에선가 삶이란 여행 같고, 또 삶은 연애 같아서, 결국 여행은 연애와 같다고 하던데 나는 제주와 8년째 연애중이다.

살기 위해, 나를 지켜내기 위해 틈만 나면 제주로 향했다. 제주를 여행하지 않고 산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책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내가 제주에서 보내는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바다를 쉽게 볼 수 없는 곳에 사는 나 같은 육지 사람은 여행을 가면 바다를 가장 먼저 찾는다. 특히나 제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바다가 많다. 나도 처음에는 단순히 바다를 보러 가기 위해 다녔다.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날씨 때문에 고생한 적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바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제주 애월해안도로
제주 애월해안도로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남들은 제주까지 가서 왜 그러고 있냐고 했지만 나는 그러려고 제주에 갔다. 자연 속에 나를 혼자 두고 싶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 소리를 듣고, 같은 곳에 앉아 시간에 따라 변하는 바다를 지켜봤다.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바다의 변화를 아름답게 해준 건 다름 아닌 하늘이었다. 낮에는 바다를 더욱 푸르게, 밤에는 바다를 더욱 반짝이게 해주는 제주 하늘이 바다만큼이나 아름다워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제주 하늘
제주 하늘

 

바닷길과 마을의 골목길을 지나 오름에 올라 바라본 제주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구름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조금 더 오랫동안 보고 싶은 마음에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잡히지 않는 구름 덩어리가 눈을 감으면 포근한 이불이 되어 줄 것만 같았다. 자연이 주는 특별한 선물, 제주 하늘이 이렇게 감사한지 처음에는 몰랐다. 어떤 날은 새벽부터 하늘이 예사롭지 않아 바다 벤치에 누워 하루 종일 하늘만 올려보며 보낸 날도 있었다. 모든 마음의 짐은 바람에 날아가고 제주 하늘 아래 무심코 행복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행복 하고 싶다고 말한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는데 그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언제부터 행복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쉴 새 없이 올라오는 타인의 SNS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며 자신도 남들에게 행복해보이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맑은 날 속에서 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살이도 구름이 흘러가듯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오늘도 제주공항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바쁘게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항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신호등만 바라보며 걷지 말고 제주의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면 좋겠다. 곧 시작될 제주 여행이 한결 여유로워 질 것이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여행이 아니라 천천히 제주를 산책 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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