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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아주머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잊었지만 라면 값이 짬뽕 값보다 훨씬 비쌌다는 건 기억한다. 계란을 넣어 주기는 했지만 분명 바가지요금이었다. 라면 값을 미리 물어 보지 않은 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군소리 없이 돈을 내고 나왔다.

김홍성 수필 [ 41 ] 울릉도 3 / 예비군

2020. 03. 17 by 김홍성 시인

 

참혹한 모습의 사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이후에는 더 이상 그 선창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다시 눈 녹는 길을 따라 걸었다. 바닷가로 쭉 이어지다가 산 쪽으로 굽이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길가에 세워진 팻말들을 보았다. 한 팻말에는 '일몰 이후 해안에 접근하면 발포함이라고 적혀 있었고 또 다른 팻말에는 '간첩이나 간첩선을 신고하면 받을 수 있는 포상금이 최고 ****'이라는 내용이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 귀로에는 일몰 전에 해안을 통과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산 쪽으로 이어진 길 끝의 마을이 궁금하여 더 걸어 보기로 했다. 얼마 후 마을이 나왔고 마을 안 골목들이 삼거리를 이룬 곳 오른쪽에 가게가 있었다. 가게 유리창에 붙어 있는 '라면 소주 탁주' 라고 쓴 종이를 보자 배가 고파졌다. 그 때까지 한 끼도 안 먹었기 때문에 가게에 들어가 라면을 시켰다.

동작이 굼뜬 아주머니가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라면 냄비를 내 앞에 갖다 놨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다. 라면이 좀 식기를 기다리며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오다가 보니 일몰 후에 해안에 접근하면 발포한다고 되어 있던데 정말 총을 쏩니까?” 

아주머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잊었지만 라면 값이 짬뽕 값보다 훨씬 비쌌다는 건 기억한다. 계란을 넣어 주기는 했지만 분명 바가지요금이었다. 라면 값을 미리 물어 보지 않은 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군소리 없이 돈을 내고 나왔다.

마을을 좀 더 돌아다녀 보고 싶은 생각은 바가지요금으로 인해 사라졌으므로 오던 길을 되짚어 한참 내려갔는데 왠 꼬마 아이가 뒤에서 부르며 쫒아왔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자 아이는 '가겟집 아주머니가 잠깐 와 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두고 나온 물건이 없었으므로 바가지를 씌운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얼마간 환불해 주려나보다 생각하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문 옆에서 '손들엇' 하는 벽력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총구가 나타나 가슴팍을 겨누었다. 얼결에 손을 번쩍 들고서 재빨리 훑어보니 탄창이 꽂힌 M1 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는 서너 명의 사내들이었다. 몸수색을 시작한 예비군 모자를 쓴 사내에게서는 술 냄새가 났다.

마침 가게 뒷방에 모여서 술추렴 하다가 가겟집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는 즉각 검거 작전에 돌입한 아주 훌륭한 이 예비군들이 몸수색에서 발견한 것은 대나무로 만든 짤막한 피리, 즉 단소 하나였다. 그 때 나는 잘 불지도 못하는 단소에 끈을 달아서 왼쪽 어깨에 걸고 그 위에 펑퍼짐한 겉옷을 입고 다녔던 것이다.

그들은 몸수색을 위해 내 옆구리에 손을 댔을 때 느껴진 단소가 무슨 기관단총의 총열쯤으로 알고서 아연 긴장했었다. 그들은 그것이 단순한 피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도 여전히 총구를 겨눈 채 신분증을 요구했다.

애당초 멀리 나오려고 작정한 게 아니었으므로 신분증은 여인숙에 두고 나왔다고 대답했다. 대장인 듯한 사내가 여인숙 이름을 물어보더니 다른 예비군에게 지서에 전화하라고 말했고 그는 가게 밖으로 뛰어 나갔다.

라면 한 냄비 먹고 나서 바로 간첩용의자로 몰린 원인은 '라면 값도 모르는 자'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이웃에 온 마음 좋은 저 아저씨 간첩 아닌가 다시 보자'는 표어도 전국 방방곡곡에 붙어 있던 시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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