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순이 오고
윤한로
우리는
덜 먹고
덜 자고
덜 입고
덜 웃고
덜 떠들고
덜 배부르게
덜 재미있게
덜 달게
덜 꿀같이
이제
더 아파하고
더 슬퍼하고
더 낮게
더 약하게
더 춥게
더 작게
더 쓰게
우리는 이제
덜떨어진 꽃처럼
덜떨어진 새처럼
덜떨어진 마음처럼
시작 메모
<오종종 박으로 병을 만들어 / 술을 담았다 / 긴 모가지에 불룩 나온 배 / 막히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는다 / 그래서 내 그만 칠을 칠해 보배 삼았으니>
이규보의 저 시 ‘칠호명’은 내가 참 좋아하는 시다. 마지막 구절은 엄청난 평범이다. 이규보는 스스로 성품이 본디 소박해서 괴상, 기이한 것들 그닥 기뻐하지 않는다 했다. 아무려나. 꾸미거나 아로새기거나 하는 것들 따위도. 내가 짚어 보는데 이규보의 영혼은 늘 ‘덜 많이, 덜 재미있게, 덜 달게, 덜 꿀같이’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