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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뿌연 물안개가 퍼지는 폭우을 맞으며 아우라지 다리를 건너 궁평리 쪽 비탈을 오르는데, 길을 타고 쏟아져 내려오는 물이 점점 많아질 때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겁이 났다. 나는 총을 거꾸로 메고 있으니 내 총신에 벼락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김홍성 수필 [ 35 ] 아우라지의 잠수교 1 / 벼락

2020. 03. 03 by 김홍성 시인

 

아우라지 다리는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궁평리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사이의 한탄강에 놓여 있다. 잠수교이다. 오늘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 보니 아우라지로 접근하는 도로는 있는데 거기에 놓였던 잠수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1킬로미터 하류에 궁신교라는 새로 생긴 교량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아우라지 다리는 영원히 잠수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지도에서 궁신교는 우리가 자살 바위라고 불렀던 큰 바위 근처에서 강 건너 신답리 공병대대 쪽으로 이어져 있다. 네이버 지도에는 자살 바위도 나오지 않는 대신 그 근처에 '리버사이드 모텔'이 표시되어 있다. 내가 공병대대 본부중대 병사였던 당시에는 고압선이 강을 건너가고 있었을 뿐 자살 바위 일대에는 다른 아무런 시설도 없는 들판이었다.

한탄강은 철원 북방에서 심한 협곡을 이루며 구불구불 남서쪽으로 흘러오다가 전곡을 지나 임진강에 합류하는 강이다. 그리고 포천 땅의 영평천이 흘러와서 한탄강에 합수하는 지점의 지명이 아우라지이다. 마을에서 아우라지 다리라고 부르는 잠수교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다음에 혹시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아우라지 다리가 아직도 거기 있는지 확인해 볼 작정이다.

일부러 찾아가서 확인해 볼 생각은 없다. 있거나 없거나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 아닌가? 내가 그 다리를 건너다니던 시절은 40 여 년 전이지만 아우라지 주변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거기서 두 번이나 죽을 뻔 했다. 한 번은 벼락을 맞았고, 또 한 번은 도깨비들을 만났을 때다.

벼락을 맞고 실신했을 때는 사단 각 예하 부대에 무연탄을 보급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우가 그치지 않고 있던 새벽에 판초 우의를 뒤집어 쓴 채 길을 나섰다. 그날 중에 대광리 역에 있는 저탄장(군수지원사령부 산하)에 가서 철책 부근 연대에 무연탄을 불출해야만 했다. 비상이 걸렸을 때여서 단독군장을 하고 있었다. 철모를 썼고, 판초 우의 겉에 탄띠를 둘렀으며 총은 총신이 땅으로 향하도록 거꾸로 메고 걸어서 아우라지 다리로 향했다.

아우라지 다리는 강물이 불면 물속에 잠기는 잠수교다. 난간이 없다. 난간을 설치하면 장마철에 떠내려 오는 묵직한 통나무 등에 의해 부서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도 높이 20 cm 정도의 정육면체에 가까운 시멘트 돌출물들이 교판 가장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돌출되어 있다.

이 돌출물들도 강물에 실려 오는 각종 물체에 부딪쳐서 성한 것이 드물었다. 이 돌출물들이 최소한의 난간 구실을 하기는 했다. 잠수교의 넓이는 대형 트럭이 돌출물들을 건드리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정도, 길이는 약 50 미터 정도였다고 기억된다.

잠수교가 놓인 지점의 양안은 모두 경사가 급한 비탈길이었다. 장마철에 도로가 젖으면 차바퀴가 헛돌았다. 겨울에 눈이 쌓이고 녹을 때도 차량 통행이 어려웠다. 군사 작전 목적으로 만든 이 잠수교와 주변 도로는 인근 군부대 병력에 의해서 늘 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정비 되어야만 했다. 신답리 들판에 자리 잡은 우리 공병대대에서 사단 사령부로 가는 지름길은 바로 이 잠수교를 건너는 길이었다. 또한 버스터미널이 있는 전곡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뿌연 물안개가 퍼지는 폭우을 맞으며 아우라지 다리를 건너 궁평리 쪽 비탈을 오르는데 길을 타고 쏟아져 내려오는 물이 점점 많아질 때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겁이 났다. 나는 총을 거꾸로 메고 있으니 내 총신에 벼락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비탈 위에 떨어진 벼락이 물길을 타고 내려오는 걸 봤다 싶은 그 순간 정신을 잃었다. 벼락이 물길을 타고 와서 거꾸로 매달린 내 총의 총신에 닿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후에야 천둥소리를 들었고 이어서 내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을 느끼며 깨어났다. 시간 계산을 해 보니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은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 그 비탈에 쓰러져 있었던 것 같다. 물길을 타고 내려오면서 전압이 분산된 벼락을 맞았기에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총도 멀쩡했다.

나는 잠시 넘어졌다 일어선 것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길을 걸었다. 궁평리에 가서 버스를 탔으며, 전곡에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대광리 역의 저탄장에 갔다. 의정부에 있는 군수지원 사령부에서 저탄장에 파견 나와 있던 선임 하사에게 내가 벼락을 맞고 기절하는 바람에 한 시간 이상 늦었다고 말했더니 그는 내가 변명하는 줄 알고 웃었다. 나와 입대 날짜가 거의 같았던 그의 조수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벼락 맞았으면 뒈지는 건데 어떻게 살아서 왔냐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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