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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로 시]

[윤한로 시] 19, 재의수요일

2019. 04. 12 by 윤한로 시인

19, 재의수요일

윤 한 로

나 이미 기름기 낀 눈으로
기름기 꽉 찬 귀로 입으로
아무리 나불거린들
그런 배로, 그런 피로
제아무리 머리에 재를 얹은들
한 끼 굶고
하루 고기반찬을 피한들
일이만 원쯤 되려나
그 돈만큼, 그 피만큼
알량한 자선을 베푼들
영혼 반짝하고 맑아진들
을씨년스러워라 바짓가랑이 속 파고드는
바람 한 줄기 오줌 방울만 같아라
, 나란 녀석 올해 사순 또한

옷만 찢었지
마음은 찢지 못하네


시작 메모

사순이 시작되는 재의수요일이면 해마다 바짓가랑이 사이로 찬바람이 파고들곤 갑자기 을씨년스럽다. 어떤 이들은 술 담배를 끊고, 어떤 이들은 커피를 끊고, 티브이를 끊는다, 핸드폰을 끊는다, 게임을 끊는다, 아예 차까지 끊고 웬만하면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으로 다닌다, 그런가 하면 먹는 걸 절제한다, 시기와 질투, 분노를 줄인다 하는 식이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결심도 끝까지 지켜내는 이들이 드물다. 순전히 형식일 수 있지만, 거의 실패하지만 그런 형식으로라도 기름기 낀 마음의 얼룩들을 조금이라도 문대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리라. 삶에서 적당한(?) 가난과 희생과 고통이 사라지니 점점 야비해지고 피폐해지는 듯해, 일이다.
 

사순이 시작되는 재의수요일이면 해마다 바짓가랑이 사이로 찬바람이 파고들곤 갑자기 을씨년스럽다. ⓒ윤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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