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지의 노래 [ 68 ] 북소리

그렇게 길을 걷고 있을 때 툭 터진 들 건너편 마을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장례가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마음이 바빴다. 북소리에 이어 나발 소리도 길게 이어졌다. 말린 향나무 가지를 태우는 산뜻한 냄새도 바람에 실려 왔다.

2020-08-28     김홍성
ⓒmongsa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깼을 때 몽사는 이미 옆에 없었다. 스님과 취생이 거처하는 방에도 사람 기척이 없었다. 아직 젊은 여주인이 부엌에서 나와 타시델레 인사하면서 그들은 조금 전에 떠났다고 말했다. 그녀는 짤막한 영어로 어제의 그 다리에서 그들이 오던 방향으로 계속 가면 마을이 나온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차를 마시고 가라면서 나무 탁자를 가리켰다.

 

내가 부엌 앞의 나무 탁자에 앉자 그녀는 또 말했다. 자기 남편은 며칠 전에 트레킹 일을 떠났다고. 그 말을 들으니 락바 라마가 생각났다. 혹시나 싶어서 다르질링의 유스호스텔에서 겨울을 보내는 락바 라마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반색을 하면서 락바 라마는 자기 남편의 친구라고 했다. 둘은 현재 같이 있으며 트레킹을 마치면 그 집으로 올 거라고 말했다.

 

언제 돌아옵니까?”

열흘 쯤 뒤에 돌아올 겁니다.”

열흘 후? 그 때까지 내가 여기 머물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군요.”

섭섭합니다.”

자녀들이 안 보이는데요.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아들 둘이 갱톡에서 중학교에 다닙니다.”

 

양철 컵으로 한 컵 가득 따른 밀크 티가 탁자에 놓였다. 설탕을 많이 넣어서 아주 달았다. 혹시나 싶어서 뚱바도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지만 남편이 올 때 쯤 되어야 익는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꼬도 락시는 있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부엌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어느새 데웠는지 향기가 솔솔 나는 꼬도 락시가 양철 컵으로 한 컵 가득 눈앞에 놓였다.

 

저는 오늘 방을 구해야 됩니다. 이 근처에는 제가 묵을 방이 없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이 동네는 모두 친척이고, 집도 몇 채 되지 않아서 서로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알아보기는 할게요. 기대하지는 마세요.”

 

밀크 티 한 잔에 꼬도 락시 한 잔은 썩 훌륭한 해장이었다. 나는 우선 어제 온 길을 되짚어서 다리를 향해 걸었다. 꽤 너른 들 가녘으로 맑은 계류가 흐르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울창한 숲이 있는 길은 산책하기 좋았다. 시내에 방을 얻더라도 매일 이 길을 걷게 될 것 같았다. 

 

다리까지 나가서 어제 몽사와 취생이 걸어오던 길로 꺾어들었다. 가까운 데 솟아 있는 야산에 가려서 설산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언덕으로 올라야 설산이 잘 보일지를 가늠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몽사에게 제대로 된 지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몽사 내외는 설산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전망대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길을 걷고 있을 때 툭 터진 들 건너편 야트막한 야산 밑 마을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장례가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마음이 바빴다. 북소리에 이어  나발 소리도 길게 이어졌다. 말린 향나무 가지를 태우는 산뜻한 냄새도 바람에 실려 왔다. 아침 이슬이 덜 말라서 개코처럼 축축한 밭두렁으로 들어섰다. 소리와 향에 이끌려서 정신없이 마을을 향해 걸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