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불빛 은행잎 (윤한로 詩)

2011-11-12     김지영
새벽 불빛 은행잎

윤 한 로

저벅저벅 가을 꼭두새벽 긴 골목길
왱하니
그리움 한 마리 느닷없이
눈 속으로 뛰어든다
‘생뚱맞다’
-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속눈썹 눈물
글썽 바다에 빠진다
촉촉이 젖는
젖어 씹히는
모기 한 마리 낙타 한 마리
내 눈이 잡아먹었구나
열라, 찝찔한 맛
눈이여, 낙타 한 마리
배터지도록 잡아먹었으니
힘내라
찬 바람 샛노란 불빛 은행잎들
도끼로 빚듯
한 바지기 똥으로 퍼올리듯
눈이여, 힘내라



시작 메모
가을이 깊었다. 차가운 새벽 길을 걸어간다. 길바닥은 샛노란 은행잎으로 돈짝이 깔린 듯 온통 너저분하다. 이미 배부른 이 도시에서는 아무도 줍지 않는 돈짝들이다. 방범 초소 컨테이너 위로 쏟아져 내리는 가로등 불빛도 샛노란 은행잎들로 벌겋게 죽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쓰레기차가 붕붕거리고 갑자기 모기 한 마리 내 눈 속으로 뛰어들었다. 글썽, 눈물이 솟으며 눈에 큰 동물 한 마리 씹히는 듯했다. 뭔가 떠오를 것 같았는데, 며칠 만에 그때 느낌을 잡아냈다. 생뚱맞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쓰고 싶지 않은, 퉤 뱉고 싶은 낱말이었다.

작 성 자 : 김지영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