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윤한로 詩)

2011-10-29     서석훈
감자
윤 한 로

얼마나 늦은 시간일까
찌그러진 궤짝 집
싯누런 램프 불빛 아래
딱딱한 나무 의자, 나무 식탁 위에
다섯 식구들 감자를 먹는다
고된 일을 끝내고
말똥냄새 나는 당나귀 닮은 사람들
굵은 주름살 잡으며
서로 아무런 말없이
소곤거림도 없이 먹는다
감자 앞에 구부린 사람
굵고 거친 손가락 더미
접시에 가득 펼친 사람
쏟아질 듯 초롱초롱 맑은 눈을 한 사람
왠지 먹을 생각도 없는 사람
오, 단순히 감자를 손에 쥐고만 있는 사람
오직 감자 밖에 모르는
코 끝 찡한 사람들
석탄처럼 검은 밤
들창 밖엔 쏟아질 듯 별이 빛나고
알았다, 울퉁불퉁한 감자 한 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옳구나

시작 메모
고호 그림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본다. 도대체 얼마나 늦은 시간일까? 가늠할 수 없다. 다섯 식구들이 저녁을 먹는다. 싸늘하게 식은 감자를 먹는다. 고된 하루 일로 피곤에 찌들었을텐데 싯누런 사람들 얼굴 표정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중 하나 두 눈이 쏟아질 듯 초롱초롱 맑다. 램프 불은 타오르고 감자를 먹고 차를 따르고 궤짝 같은 집 구석 바람이 들창을 흔들어댈텐데 정작 그림 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 다섯, 서로서로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왜일까. ‘별이 빛나는 밤에’보다, 귀를 자르고 그린 ‘자화상’보다 더 찡허다. 지금 우리 곁에도 셋씩, 넷씩, 아니 혼자서도 이렇듯 ‘감자를 먹는 사람들’ 많으리라.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