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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번지 (윤한로 詩)

서석훈
  • 입력 2011.03.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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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번지
윤 한 로

중국밭엔 진종일
노랑 하루나 꽃대궁
점심 걸러
마분지 빛 저녁 오면
뚝방 수문 끝
똥물 바다 곱다
개건너 하늘 위
눈썹 같은 조각 달
머리엔 벌써부터
반짝이는 별 하나
핵교* 갔다 왔구나
말번지 염전 동네
곤지네 거위만
괙괙




* 핵교 : ‘감방’을 은어로 학교라고 한다.

시작 메모
그러니까 저 육십년대 마분지 시대, 우리는 인천 끄트머리 8번지, 곧 말번지에 살았다. 사람들은 돈이 없어 못살았는데 우리는 갯지네를 잡다가 뻑하면 점심으로 중국밭에 도둑처럼 들어가 하루나를 뜯어먹었다. 물릴 정도로. 퀭한 눈에, 떨어진 런닝구 바람에, 상이군인에, 인민군 포로 출신에 이런 아저씨들 참 많았는데 - 생각해보니 ‘시여 침을 뱉아라’의 김수영 시인과 똑같았다 - 걸핏하면 술먹고 돈내기 윷놀고 핏대를 올리며 그러다가 싸우기를 밥먹듯 했다. 우리 애들도 거지반 공장이나 구둣방에 가거나 와리바시를 깎거나 농짝을 짜거나 구두닦이 딱쇠를 나가거나 했는데 곤지, 재떨이, 헨리, 명가이 다 그랬다. 길동이 같은 애들은 거지를 나가기도 했고 또 어느새 감방에 갔다오기도 했다. 개중에, 더러는 육사나 서울대를 가는 애들도 나왔지만.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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