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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51) - 허약한 인간을 위해서

서석훈
  • 입력 2011.03.2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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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수상한 카페의 ‘살찐 뱀 같은 마담’이라고 하자 느낌은 오는데 그 구체적인 모습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는 독자 제위가 계신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셰어’라는 미국 여가수를 소개할까 한다. 지금 그녀의 나이 어언 60이 넘었는데 세상의 위대한 디바가 다 그렇듯 나이를 초월한 아우라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다. 무대에 서면 무대가 좁아지고 노래를 하면 듣는 이의 가슴에 숱한 불꽃을 일렁이게 한다. 검정 망사 스타킹을 신은 두 다리를 굳건하게 무대에 딛고, 때로 엇박자로 내딛으며 누비는 모습은 가히 여전사를 방불케 한다. 마이크는 그녀의 에너지를 모았다가 증폭해 폭발시키고 음악에 맞춰 이루어지는 동작 하나하나는 무슨 마법의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영화에서는 요정도 악마도 아닌 기괴한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지만 전혀 시시할 수 없는 포스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이렇게 설명과 묘사를 자세하게 했지만 여러분 중엔 그저 검정 망사 스타킹에 감싸인 허벅지만 떠올리는 분이 계신다. 맞다. 그것만 떠올리라고 나머지도 얘기한 거다. 동네 카페의 마담을 세계적인 디바와 비교해서 뭘 어떡하겠나? 다만 이제 기껏 40대 초반 같으니 나이가 경쟁력이 있고, 허벅지 또한 바로 사내의 허벅지에 갖다 댈 수가 있어 현장감이 있으며, 노래는 아니어도 코맹맹이 소리는 낼 수 있으니 실속 면에서 디바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네의 디바 ‘살찐 뱀’은 아직 정체를 밝히지 않은 배삼지 국장의 직업이 그리 궁금할 것도 없다는, 그래 봐야 50줄을 향해 가는 사내 아니겠냐는 표정으로 잠자코 안주를 축내고 있었다. 마담은 원가가 비싼 안주는 좀 많이 원가가 싼 안주는 좀 적게 먹었다. 이 짓을 몇 년 하다 보니 속이 쓰린 날이 많아 심심풀이로 먹는 안주 하나도 신경을 써야 했다. 사내들이야 아무거나 처먹어도 뭘 먹었는지조차 모르며 그것마저 오직 아랫도리 세우는데 동원될 따름인 것이다.
“취미가 뭐세요?” 고삐리나 청춘이나 중노년 들도 남녀가 만나면 그저 묻는 게 ‘취미가 뭐냐는 거’인데 뱀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취미를 통해 사내의 직업 내지 재산과 돈 씀씀이 따위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취미랄 것도 없이 밤마다 학원에 가서 자기계발하고 있다는 남자를 만나면 그야말로 김샌다. 사내들은 그곳이 부실할수록 자기계발이니 뭐니 얘를 쓰고 있지 않냐 말이다. ‘사내구실이나 제대로 하고 남은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해야지’ 이런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는 뱀이었다. “취미? 취미라기보다 그림 감상 좀 하고 음악도 가끔 듣지.” 그림이라면 포르노를 뜻하는 것일 터이고 음악이라면 뭘 말하나? “피카소도 베를린 필하모닉도 시간이 나야 가보는데 요즘은 시간이 통 그렇네.” 이건 또 뭔 소리야? 살찐 뱀은 이 부실한 사내가 예술에 헌신하고 있는 허약한 인간이라는 걸 대번에 눈치 챘다. 허약한 인간은 몸으로 조질 필요가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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