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너는 일을 그만뒀다. 맹인 원장에게 사직서까지 썼다. 내가 바랐기 때문일까, 사실로 될 일이기 때문일까. 다시 머릿속이 막혔다.
“왜 나를 보면서도 모르니.”
에로스도 아니며 필리아도 넘어섰다. 처음 봤을 때 그리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서로에게서 자신을 봤고, 자유롭기를 원했다. 서로 어쩌지 못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를 잘 아는 제삼자, 그의 은총이다. 그런데 이제는 말조차 섞을 수 없다. 꿀처럼 달콤하고 기름보다 매끄럽던 네 혀는 쓴 독, 날 선 칼이었다. 그래도 받아들이는 게 연인의 정석이고 사랑에 눈먼 자가 할 일이라 생각했다. 차라리 눈먼 게 낫지. 눈먼 척하는 게 낫지. 우리는 모두 눈먼 자 같지 않던가.
너는 나를 신에게 고발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침묵으로 비난했다.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빛이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한 죄인은 사실 나였다. 창녀처럼 꾸미고 간음을 즐긴 여자가 나였다. 도살장으로 끌려간 황소, 올무에 걸려든 수사슴이었다. 배교의 증거는 버젓이 내 안에 살았고, 추악한 동기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증환(症幻)의 흔적으로 남았다.
“우린 소울메이트 아니야.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어. 너도 일상으로 돌아가서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영적이든 육적이든 순결은 두 남녀가 만난 후부터 유효하다. 그래서 창녀도 결혼하고 사랑하는 일이 당연하다. 유독 수컷만 과거에 집착한다. 신이 한 인간을 받아 주고 거두는 일은 아가페 때문에 가능하다. 그의 개입, 이대로 엇갈리게 하는 그가 원망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우리 만남을 우연으로 치부하고 영원히 서로 모른다고 하면 속도 편하고 정신은 멀쩡해지고 영혼은 정화되겠지. 끝까지 투쟁해도 그는 신이며, 나는 시공간에 사로잡힌 인간일 뿐이다. 이 사실을 가르쳐 준 이는 신자들이 아니라 음지 세계에서 몸짓하는 창녀, 바로 그대였다.
그대는 내 자발적 타락의 속죄제로 남았다. 우둔한 수송아지가 아니라 입술로 노래하는 암송아지다. 그대가 웃는다. 그대가 나를 웃게 한다. 생지옥에 있는데도 마음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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