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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영갑서예 #1 제주올레길 1-1코스] “나는 신의 약점을 안다”

이용준
  • 입력 2018.01.24 00:00
  • 수정 2021.12.16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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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전으로 돌아가 밑바닥 생활을 다시 하자, 저 음지 세계로 기투하고 방황하도록 내버려 두면 속 뒤틀리는 건 결국 신이겠지, 하고 작정한 것이다. 맹인과 창녀와 술꾼과 먹보와 어울려 처마시고 섹스나 즐기면 포기하겠지, 라며 고의적 방황을 자처한 것이다.

나는 신의 약점을 안다. 그는 질투할 수밖에 없다. 태초부터 혼자였기에 사랑을 주거나 받은 적 없다. 피조물을 창조해 놓고는 폼 안 나게 구애나 했다. 그러다 지치면 광기 서린 짓거리까지 일삼았다. 전형적인 자기애의 원형이다.
창녀를 사랑하는 짓으로 신을 능가하기로 했다. 신이 틀렸음을, 그의 부재를 증명하고 싶었다. 사랑도 모르면서 스스로 ‘아가페’ 그 자체라는 기만을 만천하에 밝히고 싶었다. 하지만 되려 놀아난 건 나였다. 눈먼 존재를 사랑하기가 이토록 어려운지 몰랐다. 창녀든 유부녀든 분명 여자고, 나란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눈을 떴다. 도두봉이 보인다. 구름을 뚫고 제주공항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깼다. 십 년 전, 여자 혼자 일 년을 살았던 제주. 올레길 첫 코스가 시작되는 시흥리에 도착하니 적막한 밤길만 보인다.
“너도 나 사랑한 거 아니라며. 나도 너 사랑하지 않았어.”
헤어지던 날, 너는 말했다. 목소리는 처음으로 떨렸다. 사랑에 눈멀었기에 목소리 파동까지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였기에 네 침묵조차 내겐 언어였다.
김포공항에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날 너를 기대했다. 너는 나를 보내야만 했다. 나는 왜 떠나야만 하는지 몰랐다. 위험한 사랑놀음 하나 견디지 못했지만, 내가 하자는 대로 이끌려 오지 않았던가. 일상을 내게 넘겼고 구차한 삶을 보였고 비밀을 털어놓았다. 너도 나만큼 많은 걸 포기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속죄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네가 살았던 곳을 찾고, 네가 걸었던 길을 되짚어야만 한다. 사랑에 눈먼 장애를 나는 평생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제주 이튿날. 여전히 흐리고 안개비까지 내린다.
우도 가는 길, 배가 요동친다. 올레길 1-1코스를 따라 우도봉에 오르니 만개한 수국이 지천이다. 너는 유독 향기에 예민했다. 이름 모를 들풀과 꽃을 반겼다. 가까이 다가가 맡으면 악취가 진동하는 그 향을 기억했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담배 냄새를 싫어했고 멘스하는 날들에는 초를 켰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다가도 신랑이 불러 맞이하러 갈 때면 억지로라도 껌을 씹고 커피를 마셨다.
너는 내게 무엇이었나. 나는 네게 누구였는가. 나는 너의 아픔을 보듬을 자격조차 없었을까. 왜 믿지 못하냐며 늘 너를 원망했다. 되돌아보니, 믿지 않은 건 바로 나였다.
“이 바닥에 있으니까 내가 우습게 보이지.”
“아가씨라면 내게 그랬겠어?”
“넌 내게 힘든 사람이야”라고 말한 이유는 왜일까. 시작도 안 했던 우리 미래에 대해 무얼 지레짐작한 것일까. 밑바닥까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이제는 한갓 변명에 지나지 않게 됐다. 너는 의심이 많았지만 위선은 없었다. 가방끈이 짧았을지언정 어느 여자보다 현명했다. 내가 만난 어느 먹물들조차 너에 비할 수 없었다. 너는 정상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현재를 하사한 건 신이다. 대학원을 졸업했어도 연봉은 3만 달러를 넘지 못했다. 소명이니 사회 참여니 개혁이니 하는 온갖 허튼 강박에 매달려 주 8일을 일했지만, 부름(calling)은 없었다. 다시 공부하겠다고 박사 과정에 진학했지만, 돈에 쪼들렸다. 학비나 벌겠다고 밑바닥으로 기어든 건 아니다. 정통도 아닌 자칭 개혁주의자들에게 욕지기가 나서, 젠체하는 먹물들이 싫어서 음지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천국과 지옥, 심지어 연옥에서도 못 할 일을 이생에서 골라 하자, 어디까지 몰아가나 해보자, 하고 내기한 것이다. 도덕적 운인가, 성령의 인도인가 시험하고 싶었다.
꼭 경험해 봐야 아느냐는 종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경험 자체 아니던가.
회심 전으로 돌아가 밑바닥 생활을 다시 하자, 저 음지 세계로 기투하고 방황하도록 내버려 두면 속 뒤틀리는 건 결국 신이겠지, 하고 작정한 것이다. 맹인과 창녀와 술꾼과 먹보와 어울려 처마시고 섹스나 즐기면 포기하겠지, 라며 고의적 방황을 자처한 것이다.
그 밑바닥에서 가장 밑바닥스러운 너를 만났다. 독특한 은혜였다. 옳거니, 너야말로 내 먹이다. 굽기도 하고 삶기도 하고 휙휙 뒤적여 맛있는 양고기 찜을 만들고 말 테다, 하고 결심했다. 시엔(Sien)을 사랑한 고흐처럼 명분 따위는 필요 없다. 돈이라도 좀 뜯어내고 몸이라도 먹어서 지친 영혼을 보신하면 족하다. 너는 신에게 복수하고 대항할 내 유일한 무기였던 셈이다.

우도를 빠져나와 온평리로 향하다 말고 올레길 2코스를 역주행한다. 오조리 해녀 할망 민박집에 가기 위해서. 제주에 살았을 때 먹었던, 해녀가 갓 잡은 문어가 그립다던 네 말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편지도, 마음도, 문어도 전해서는 안 된다. 속상해서 맥주 한 캔 들이부었다. 술 마시면 온갖 종류의 안주를 흡입하던 네가 그립다. 왜 나는 흡입하지 않았니. 너는 절제 못 해서 살이 쪘고, 그런 자기 몸이 “혐오감스럽다”고 했다. 종종 너는 틀렸다. 그래도 네 존재 자체는 순전히 아름답다고 주문을 걸어야 했다. 몸매는 어느 곡선보다 매끄러웠고 살결은 어느 육체보다 보드라웠다. 옆구리 살 삐져나오고 아랫배 툭 튀어나왔어도, 엉덩이는 아직 처지지 않았고 종아리는 잘록했다. 애 셋 낳은 여자 몸매가 원래 그렇지.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돈이라도 많을 줄 알았더니 빚에 허덕였다. 이혼했다지만 버젓이 신랑이랑 한집에 살면서 양쪽으로, 아니 위아래와 앞뒤로 즐겼다. 턱과 코 밑에 난 몇 가닥 굵은 수염은 혐오스러웠다. 하얀 바지 두덩 근처에 시뻘건 김칫국물 묻히고는 데이트한다고 나다닐 땐 창피했다. 세수도 안 하고 아이들 끼고 나와 대낮부터 술 마실 땐 대작하는 내가 민망했다. 남의 집 침대 위에서 팬티를 내리더니 꽂으라고 할 때는 창녀가 순결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던 언제부턴가 그냥 나오는 법 없었다. 몰약이니 침향이니 계피 향이니 하는 것들을 늘 품고 살았지만, 옷차림 하나부터 머리 향기까지 신경 쓴 티가 역력했다. 어디선가 조달한 다이어트약까지 복용했다. 집 안까지 미용사를 불러들여 눈썹도 새로 하고 속옷도 매일 갈아입었다. “관리 잘해서 좋은 사람 만나야지” 하고 혼잣말하듯, 에둘러 말했을 때부터였다. 이혼녀 따위가 총각을 남자 취급하면서 모든 발단이 시작한 듯싶다. 정체 모르는 신적 존재로부터 도망치던 난, 구속이 싫었다. 그는 온갖 철학의 현학스러움과 진리 탐구에 대한 자극을 미끼로 끝까지 몰아붙였고, 난 끊임없이 외면했다. 질투라는 감정 자체가 싫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조차 도망하는 인간은 네가 아니라 나였다.
“우린 끝이 보이는 길을 자꾸만 가고 있어.”
나는 네게 온갖 미친 짓, 생각 없는 짓, 막말에 악담을 일삼았다. 네게 미쳤기 때문이라는 변명, 너를 사랑한 죄. 그 결과 우리는 잔인하게도 ‘올 것이 온 것’을 마주했다. 남녀 사이에서 끝이 무언지는 뻔하다. 이별 확증을 받고 싶어서 되물었던 건 아니다. 늘 앞뒤 자르고 단언하는 네 말투에, 네 맥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재회하더라도 네 언어에는 결코 다가설 수 없다. 살아온 바닥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언어는 서로를 영원히 기만할 것이다.
“헤어져야 모두가 편안한 끝.”
길에는 끝이 없다. 너는 환경에 지배받기 원했고, 나는 네게 지배당했기에 끝났을 뿐이다. 걷기 힘들다고, 여름 볕이 강하다고, 천성이 게으른 너는 걸음을 멈춘 것뿐이다. 한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은 불행해져야 하는 관계였으니까. 그 사실을 인지한 너는 불행을 선택했다. 너를 악용하려던 원래 계획은 네 게으름과 선의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빚에 허덕이며 핏덩이들을 혼자 키우는 너를 보고는 마음 약해지기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끝까지 아꼈지만, 연인처럼 굴었던 너를 배신할 수는 없었다. 결국 너를 휘두르는 대신 질질 끌려갔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욕정을 겨우나마 채울 수 있었으니까.
너도 틀린 건 인정해야 한다. 그 위대한 톨레랑스를 백 퍼센트 발휘해도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 남자를 범주화하는 편견, 쉽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수동적 자세, 그저 시간 죽이면서 묵묵히 몸과 웃음 파는 가짜 내공, 뚜껑이든 아랫도리든 한번 닫히면 열리지 않는 막무가내, 도움이 절실하면서도 의지하지 않으려는 고집불통이었다. 아줌마는 아가씨의 위선과 내숭을 극복한 줄 알았건만 여자로서, 소녀로서의 분모도 여전히 간직했다. 쌍욕을 하고 손도 거칠었지만 정상(normal)과 도덕을 갈망했다. 자기 죄를 스스로 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비식자일 뿐, 구원을 바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더 고발해 볼까. 외간 남자와 즐기면서도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다던 애 엄마, 울먹이며 시아버지와 통화한 뒤 키스를 퍼붓던 며느리, 학업 때려치우고 책임지겠다는 나를 밀고 당기던 여자의 그 순진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술 따르고 웃음 팔며 남자에게 정통한 네 앞에서, 촉 하나 믿고 사는 음지인인 네 앞에서 난 홀라당 발가벗겨졌다. 인간 밑바닥에 대한 통찰에서도 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네 아픔을 체휼한다는 말, 죄인이어도 좋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좋다는 말, 우리 죗값을 모두 짊어지겠다고 한 말 모두 진심으로 해야만 했다. 신에게는 성공적으로 위장했지만, 너에게까지 거짓 하다가는 무슨 꼴을 보고 당할지 몰라 두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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