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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대통령이다] #21 62년 만에 간통죄가 폐지됐다

이용준
  • 입력 2017.06.05 00:00
  • 수정 2020.07.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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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적당히 순응하는, 누구나 추구하는 순응적 삶에는 역설적으로 불행이 있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그 욕구에는 근본적으로 자유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 구속되고 그래서 사랑하지 못하며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미련한 한국 남자들만 아직도 여자 친구가, 내연녀가, 아내와 아이들이 제 것인 줄 안다. 가족 살해 비율이 대폭 증가한 것도 미련하고 무능력한 남자들이 전근대적 가부장주의에서 헤쳐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서초동 아파트에서 40대 가장 강 모 씨가 아내와 두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목을 졸라 살해한 뒤 119에 신고하고 새벽에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재작년, 직장을 그만둔 강 씨는 실직 후 시세 11억 원에 이르는 서초동 아파트를 담보로 5억 원을 대출받아 아내에게 매달 400만 원씩 생활비를 건넸고, 가족에게는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처럼 위장했다고 합니다. 고시원으로 출퇴근하던 강 씨는 주식투자에서 2억7000만 원가량 손해를 본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처지를 비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범행 현장에 남긴 노트에는 유서로 보이는 내용의 글이 발견됐고 신고 당시 처와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고 말했지만, 가족만 살해한 후 도주했습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발생한 가족 살해는 총 611건으로 연평균 84건, 매년 전체 살인 사건의 약 7%에 이른다.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뉴스에서는 범죄심리학자, 과학수사 전문가들을 동원해 이번 상황을 분석했다. 이들은 가장이 가족을 대상으로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일그러진 가족주의, 아내와 자녀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가부장주의가 경제적 어려움과 결합해 빚어진 참극이라고 떠들어댔다.
외국에서는 찾기 힘든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유독 두드러진 이유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의 영향이자 그 문화의 잘못된 유산으로 가족 구성원 개체를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절거렸다.
남자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의 한 패널은 “외국에서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도 부모에게 의존할 정도로 양육의 책임과 기간이 긴 상황이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남자들은 사실 변했다. 예전 같으면 목숨을 걸고 가족을 지켰지만, 지금은 가족에게 범행을 저지른다. 권일용 경찰수사연수원 교수는 “가장 많이 이해해 줄 것 같고 편이 되어 줄 것 같은 가족으로부터 실제로 도움을 얻지 못하면 분노를 분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에서 받은 좌절감과 분노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이런 멍청한 남자들이 있으니 여자들이 제 고향 땅에서조차 남아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남자들은 멍청한 게 아니라 단순한데 그걸 이용하고 비난하고 도망하는 그네들은 의외로 여리다. 남녀평등 사회가 도래한 탓에 오늘날 여자는 그들만의 장점,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 탓이다. 반면 남자에게는 모성애가 넘친다. 없던 공감 능력이 생기니 가족을 향해 원망하는 것이다. 성별의 구분, 이웃이 사라진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종말의 서곡이다.

남자는 그렇게 떠난 뒤로 다시 연락이 없었다. 카카오스토리에 일주일 간격으로 두 개의 글이 올라왔는데 중심을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몸 더 망가지고 철이 들거든 그때 오시게. 아무도 밥 사주지 않고 그 상처 거부할 때 그때 오시게. 실컷 자유 누리고 방황하다 사기도 당해보고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있게 되면, 고귀한 사랑이 무언지 뼈저리게 느끼고 후회했을 땐 늦었다고 생각할 때 그때 오시게. 개명해도 새해가 밝았어도 앞날이 창창하지 않은 근본 원인을 알아갈 때, 엄마도 가족도 친구도 그 말에 더는 휘둘리지 않고 진짜 나를 찾아야겠다고 할 때 그때 오시게. 지금이 바로 그 영원, 찰나의 순간인 것을 알고 영원을 살고 싶을 때 그때 오시게. 참 행복을 더는 거부하기 지칠 때는 이미 늦네. 너무 늦지 않게. 나도 인간일 뿐이니까. 닮은 유일한 영혼이니까.’

‘서로 잘 알다시피 우리는 똑같은 과오를 반복했어. 그대 말처럼 서로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아가페를 받아들일 수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싫지 않다는 것. 미래는, 영원은 우리 현재에 있다는 사실. 사랑은, 무조건적인 아가페는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그대도 나도 알면서 거부했잖아. 내가 건넌 강은 우리 모든 과거, 잘못을 건너는 강이었어. 그대도 그럴 거야. 난 알아. 그대는 더 잘 알고 있고. 난 그대를 감당하고 그대도 날 감당할 수 있어. 서로의 아가페가 깊으니까. 그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미래가 있으니까. 그 힘은 우리 의지가 아니라 숙명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아파하자. 더 아파하고 의심하자. 진짜는 그래야만 하잖아.’

떠난 남자는 여자를 잊지 못했지만, 남은 여자는 마음 정리를 이미 했다. 내게도 간헐적으로 연락하거나 미사에 왔다가 하는 식이었다.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에는 사제관 앞으로 고디바 초콜릿 한 박스가 택배로 도착했다. 여자가 보낸 것이었다.
2월 22일 사순 제1주일 때는 성당을 찾아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사흘 뒤에 드디어 졸업한다는 것과 한국마사회 사진기자직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코리아’에 재능 기부를 하며 보람도 찾고 있고, 자기를 오래 짝사랑해 온 후배 사진작가 김기환과 동업한다고도 했다. 전남편도 다시 만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친구 혜진이의 소개로 9살 연하인 ‘창기’라는 이름의 남자와 사귀고 있다고도 했다. 연하들과는 잠시 즐기는 것뿐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여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알아가며 최근 유행하는 ‘돌싱’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돌싱이란 어떤 존재일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타자로부터 속박되기 싫어 스스로 해방된 존재가 아닐까. 그네들의 공통점은 행복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외로움에 치를 떨면서 개념조차 모르는 행복을 좇아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삶으로 살아 낸다. 그러다가 가족이 있을 때, 남편과 아내가 있을 때 왜 진작 잘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실 그네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행복이 아니라 자유다. 현실에 적당히 순응하는, 누구나 추구하는 순응적 삶에는 역설적으로 불행이 있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그 욕구에는 근본적으로 자유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 구속되고 그래서 사랑하지 못하며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성당을 찾아온 그날도 여자는 가볍게 술 한잔 하자고, 초콜릿 먹은 값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남자가 말한 게 마음에 꺼림칙하게 남아 있어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다음에 만나자는 말은 예의상 남겼다.
그리고… 여자를 거부한 지 나흘이 지나 62년 만에 간통죄가 폐지됐다.

‘용성 씨, 저 미아예요. 우리 전에 만났던 데이파크로 와 줄래요? 기다릴게요.’

사순 제4주일 저녁미사를 끝내고 포도주 한 병을 마신 뒤 일찍 잠들었었다. 여자에게서 온 텔레그램 메시지 소리에 잠이 깼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나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스며들었다.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고 더는 약속을 미루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애완견과 얼굴을 반씩 맞대고 찍은 프로필 사진도 위협적이었다. 애완견 노릇을 하지 않다가는 보신탕 신세가 될지 모른다. 도살장에 끌려가도 마냥 좋다는 돼지, 두 눈으로 우는 소, 뉘일 곳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말과 같은 꼴이다.

여자는 벌건 어묵탕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벌써 두 병째다. 초봄, 밤은 아직 쌀쌀한데도 반소매 니트 티를 입고 있었다. 목에 잡힌 주름은 더 깊어져 마치 때가 잔뜩 낀 것처럼 보였다. 도드라진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티 사이로 브래지어가 비친다. 보라색이다. 가슴만큼 브래지어도 크다. 원색적인 파란색 민무늬 긴치마는 하늘하늘해 위로 훌렁 까뒤집든 아래로 쑥 잡아당기든 쉽게 벗겨질 태세다. 얼마 전 뉴스에서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즐겨 입은 옷이 파란색 톤이라고, 이는 평화와 진실, 조화 또는 치유를 의미하는 색이라고 보도한 내용이 언뜻 생각났다.

여자는 나를 보고는 무척 반갑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침울해 했다.

“무슨 술을 이렇게 마시고 있어요?”
“어머, 신부님이 아줌마 보러 행차하셨네. 아이고 고마워라… 꺼억.”

벌어진 입은 속에서 치민 트림을 제어하지 못했다.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닐뿐더러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니 양해를 바란다는 것 같다. 어묵 소화된 냄새가 아니라 자주 맡아 본 적 없는 그러나 어디선가 분명 경험한 적 있는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무슨 속상한 일 있어요? 왜 그래요?”
“어제가 화이트데이였잖아요. 그 누구한테도 사탕을 못 받았어요. 어떻게 신부님까지 나한테 사탕을 안 줄 수 있어요?”
“주말엔 정신없는 것 알잖아요….”
“아니, 그래도 그렇죠! 난 택배로라도 초콜릿 줬잖아요. 그리고 나 한국마사회 사진기자 결국 떨어졌어요. 마지막으로 품은 희망이었는데…. 이혼당하고 남자들한테 버림받은 년을 누가 받아주겠어요.”

나도 더는 모르겠다. 남자들을 지치게 하고 걷어차 놓고는 버림받았다고 되뇌는 이유를.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거부하고는 떨어졌다고 하는 이유를. 새로운 남자를 만나려는 기만이자 새 직업을 얻으려는 정당화 아닌가. 하지만 이 여자는 연민의 대상이자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다. 남녀가 아니라 가족이기에 다그치기보다 이해하고 들어줘야 한다.
“영민 형제는? 연락해 봤어요?”
“전화를 안 받네요. 사실 나 차단됐어요. 얼마 전에 마사회 시험 앞두고 사람들 소개해 줄 테니 만나자고 했는데 제 힘으로 하고 싶어서 대꾸도 안 했거든요. 그날부터 도통 컨택도 안 되고…. 그 자식, 회사도 그만둔 거 알아요? 아까 인덕원 집에 가 봤는데 벌써 다른 인간이 살더라고요. 제주도로 내려간다더니 정말 그런가 봐. 날 버리고 혼자 떠났어!”

고해성사를 빙자해 내게 한 말을 남자는 이뤄냈다. 하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순식간에 해치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잘 좀 하지 그랬어요.”

잔 채우는 것을 잊은 여자를 대신해 자작한 뒤 여자의 잔도 채우며 말했다. 이내 곧 후회했다. 이들 싸움의 이유야 이제 빤하지 않던가. 남자가 떠난 이유는 남자에게 물었어야 했다. 자기연민에 젖은 여자는 싸운 이유가 아니라 만나서는 안 됐던 이유를 혼잣말하듯 반복했다.

“시작하지 말았어야 해…. 걔를 제주도로 불러들인 게 아녔어. 그놈이 처음부터 헤어지자고 했을 때 거기서 시마이했어야 해. 이런 비참한 기분을 들게 하다니, 복수할 거야. 개 같은 새끼.”

언어는 다시 거칠어졌다. 회귀였다. 여자는 연거푸 잔을 비웠다. 서툰 젓가락질로 안주를 입에 욱여넣고는 우물거렸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니 연민이 더해졌다. 마치 길에 떨어진 기억을 씹어 넘기는 인상을 풍긴다. 그래야만 또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듯. 술잔을 털어 넣다 말고 여자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종이를 꺼냈다.

“이게 뭐죠?”
“영민이의 마지막 편지요.”
A4 용지 네 장에 적힌 글은 여자를 ‘기다린다’던 남자의 마지막 말과는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by 이준 -Copyrights ⓒ말산업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자 주
‘여자가 대통령이다’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유령이 한 나라를 집어삼킨 현재, 이 시대를 살아 내는 한 민초 여자와 동갑내기 신부 박용성, 경마 기자 이영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재소설입니다. 작가는 “간통죄가 합헌이어도, 여자는 위헌”이라며, “우리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에게, 우릴 창조한 신에게만 유죄라고 통보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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