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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38

윤한로 시인
  • 입력 2022.01.04 11:44
  • 수정 2022.01.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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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

 

 

꽃잎은

이슬 먹고

 

새들은

버러지 먹고

 

우리야

개떡 먹지

 

개떡

오누이

 

 


시작 메모
작년, 오랜 벗 김문영이 시집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를 냈다. 이젠 거의 꺼져가는 듯한 촛불 혁명에다, 더해 괴롭고 울적한 코로나 시대까지, 친구는 시집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이겨내고자 절규했다. 그런데 문영이와 우리는 작고 못나고 찌질하고 외롭고 우둔 우직한 저 개떡 세대이기에, 꽃잎은 이슬들 먹지만 우리야 개떡 먹었기에, 따라서 어떤 어려움이든 거뜬히 이겨낼 수 있기, 나는 그 시집 해설도 다음 시로 갈음했다.

 

개떡들의 노래
 

코로나여

빨리

가라

그리하여 이제 다음과 같은

시대 올지니,

작은 게 큰 것보다

훨씬 더 큰,

약한 게 강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슬픈 게 기쁜 것보다

훨씬 더 기쁜,

못남이 잘남보다

훨씬 더 잘난,

외로운 게 안 외로운 것보다

한참 덜 외로운,

힘든 게 힘 안 드는 것보다

훨씬 더 힘 안 드는,

재미없는 것들이 재미있는 것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못 쓴 게

잘 쓴 거보다 훨씬 더 좋아서 배가 아픈,

땟국 좔좔 흐르는 것들

눈꼴시어 빠져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챙피하고 쪽팔린 게

교만보다 더욱 교만방자한,

없는 게 없다 없다 펑펑 흘러넘쳐서 죄가 되니

나두 좀 덕지덕지 가져 봤으면 엄청 깨끗할 듯한,

지질한 게 시들시들한 게

야들야들한 것들께 갖은 미움과 질시를 받는,

우둘투둘한 게 꺼끌꺼끌한 게

매끈매끈한 것보다 쩸맛없는,

존만 한 것들도 시시껄렁한 것들도

외투깃 속 고독 한 번 씹어 보는,

케케묵은 게 쀼루퉁한 게

현란한 기교 가식 매너리즘 덩어리보다

아주 거들먹거리는 영혼 질리게 하는,

내용이 참여가 실천이 삶이

무의미 기술 기교보다 형식보다

저급 저열한,

영혼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우둔 우직 둔탁 미련 촌스러움이

약삭빠름 명석함 약아빠짐보다

정나미 뚝뚝 떨어지는

그런 시대 올지니,

마음이 깊고

어둡고 절실하니

오히려 시는 개 같고

길고

차라리 마음 개 같으나

시 깊고 어둡고

짧은

그런 시대 올지니,

그런데 진리와 진실이

(단순 소박은커녕)

왜 늦은 밤 산사 토방 같은 데다 사람들 뫄 놓곤

잘난 체 이빨 까는 게 싫여

또 그 앞에 빙 둘러앉아 홀짝홀짝 차를 마시며

마냥 헬렐레하는 것조차도 너무 싫여

마침내 안 되겠다 이쯤 찌그러져얐다

몸무게를 줄이러 가는 척 자리를 뜬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 그러나 밖은 너무 춥다

바람과 구름 별과 나중에는 기껏 오동나무나 담벼락

이런 것들과 얘기를 할 수밖에

무얼 빨러 나 여기 쫓아왔나

거기 침을 뱉거나 발로 차거나 긁거나 할 수밖에

퉤 진실은 제발

재미없기를 감동적이지 않기를

사뭇 심각 진지하지 않기를

시골구석에서 올라온 듯

더듬더듬 말 잘 못해 어눌하기를

이따금 깔깔거리는 저들 아유!

진실은 거지 라자로처럼

이 세상에서는 갖은 좋은 것 갖지 않기를

제발 부자이지 않기를 배에 기름지지 않기를

추운 데서 홀로 오들오들 떨기를

이 세상에서만큼은 제발

부자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 채우기를

개들까지 와서 종기를 핥기를

진실은 꽁지머리에 백구두에 퉤퉤

사람들 뫄 놓고 잘난 체 이빨까지 않기를

그런 시대 올지니,

우리 비로소

들을 줄 모르는 법을 알게 되고

볼 줄 모르는 법을 알게 되고

또한 말할 줄 모르는 법을 알게 되고

그런 시대 올지니,

그렇다

우리가 조금은 어리석지 않다는 건

얼마나 불행한가,

우리가 모든 걸 내 뜻대로만 한다는 건

얼마나 더러운가,

우리에게 좋은 일만, 쾌락만 생긴다는 건

얼마나 비참한가,

나무가 기쁘고 돌이 기쁘고

거끌거끌한 게 기쁘고 움푹 패인 게 기쁘고

바람에 흔들리는 게 기쁘고

구부러진 게 기쁘고 우뻑지뻑한 게 기쁘고,

마침내 그런 시대 그런 역사

올지니

코로나여 빨리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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