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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36

윤한로 시인
  • 입력 2021.12.25 08:28
  • 수정 2021.12.2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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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둥긋하니 안짱다리

황소고집 아버지 깜냥

 

왼짝 코는 오른짝 코로

오른짝 코는 왼짝 코로

 

가생이짝은 안짝 삼아

안짝은 가생이짝 삼아

 

너덜짝일랑 두덕짝 되게

두덕짝일랑 너덜짝 되게

 

오래오래 신고자 길동무나 삼고자

그예! 바꿔 신었나 보이

 

초생달 걸음걸음

강화 수무김치 트림에

돌단풍 잎사귀 즈려밟으사

 

 

시작 메모
황순원의 엽편 소설(아주 짧은 소설) ‘주검의 장소에 나오는 우직한 산골 농사꾼 모습도 떠오르고, 강화도 작은 섬에 사는 우리 형님 모습도 쓰고 싶고, 김소월 <진달래꽃>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는 구절도 떠오르고. 저 엽편 소설은 이백자 원고지 열 장쯤 될라나? 사십 줄 농사꾼이 나오는데 어수룩하나 황소처럼 고집이 세기 이를 데 없다. 다리가 우긋한 안짱다리로 고무신을 왼쪽, 오른쪽 바꿔 신었다. 그때 시골에서들은 신발을 오래오래 신으려 이렇게 바꿔 신었다. 그러나 수사관들한테는 이것이 바로 접선 표시였다. 결국 첩자로 의심을 사서는 모진 고문 끝에 끌려가 죽음을 맞는다. 신발은 왜 바꿔 신었냐, 한쪽이 닳아서 오래 신으려고 바꿔 신었다, 접선하려는 표시가 아니냐, 아니다 한쪽이 닳아서 오래오래 신으려고 바꿔 신었다. 아무리 우겨도, 변명이고 진실이고 나발이고 정황이고, 산골 농사꾼 따위 말은 이미 먹히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왼짝, 오른짝 그 고무신짝은 바꿔 신은 채 죽음을 맞는다. 진실이 먹히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을뿐더러 숫제 깔아으깨는 애통한 시대를 슬프고 아프게 썼다. 그런 구차한 안짱다리 아버지 아재 형님들 걸음걸음이 아직도 선하다. 초생달처럼 비스듬하기만 하랴. 붉은 단풍잎 함부로 밟을지라 즈려밟기까지. 그니들 삼시 세끼 먹는 진한 수무김치 트림도 그윽하게 얹었나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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