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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의 혼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1.12.23 14:48
  • 수정 2021.12.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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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를 써보자

 

좋은 하이쿠들이 많아 올해까지 정리하고 싶어 3명의 3개의 하이쿠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다 필자가 번역했다. 홍시, 너도 젊었을 때는 떫었다는 소세키의 유명한 하이쿠도 있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소설이 고양이가 주체고 주인을 보는 시점이 독일 소설을 모방했다는 말이 있어서 다루지 않는다.

하이쿠는 제목도 없고 일본어나 한자는 띄어쓰기가 없어 띄어쓰기 없는 한 줄이나 시적 모양새를 위해 3행 처리했다. 한글도 서재필의 ‘독립신문’ 나오기 전엔 다 붙여 썼으나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시다가 돼서 최초로 캐나다 선교사 주도로 주시경과 함께 띄어 쓰게 됐다.

아라키다 모리다케(Arakida Moritake)는 1473년에 태어나 1549년 8월 30일 사망한다. 승려이며 아홉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고 유명한 작가 후지나미 우지츠네(1402-1487)의 손자다. 지는 꽃을 보고 가지에 앉았던 나비로 생각한다는 건 떨어지는 꽃이 꼭 죽은 것만은 아니란 의미로도 다가온다. 나비가 떨어진 게 아니라 죽은 꽃도 다시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삶의 순환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생각난다. 내가 나비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건지. 꽃이 나비가 된 건지 나비가 꽃이 된 건지 알 수 없다.

 

Falling petal

returning to the bough;

Butterfly

떨어진 꽃

가지로 돌아가니

나비구나

아래처럼도 번역해 봤다.

떨어지던 꽃

가지로 돌아가네

나비였네

 

Steven D. Carter는 아래처럼 영번역하지만 일본 원문에 있는 한자 볼 견 자를 I thought로 생각한다는 의미로 했으나 사족 같다. 또한 볼 견 자가 생각하다는 뜻도 있지만 나비와 꽃 구별은 바로 보고 아는 거지 생각해서 아는 게 아니다.

A fallen blossom

returning to the bough, I thought --

But no, a butterfly.

나뭇가지를 빼고 그냥 바람에 올라간다는 영번역을 한 번역자도 있다. 한글 번역자들은 그 영 번역을 기반으로 한 듯하다. 류시화 님 번역도 아래인데 매우 시적이다. 꽃잎 하나 떨어진다로 조사를 뺌도 낫다. 시에서 조사 하나라도 빼는 게 간결하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여긴 꽃잎과 나비가 분리된다. 나비는 다시 가지로 가지 않고 허공으로 날아간다. 원문은 나비든 꽃이든 떨어진 후 다시 자기가 있던 나뭇가지로 돌아간다 물아일치다. 원문을 살려야한다.

시인 칸노 타다토모는 1625년에 태어나 1676년 사망한다. 숯의 타다토모, 흰숯의 충성심으로 불린다. 타다토모 이름 뜻이 충성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타다는 탄다는 뜻인데 시와 어울린다. 이름처럼 충성심 깊은 사무라이였는지 할복했다.

시는 두 가지로 번역해 보았다. 정확한 내용은 흰숯이나 타기 전엔 눈꽃가지란 의미다. 세미콜론처리를 한 건 원문 의미가 '이나'의 뜻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리즈 시절이 있다. 숯의 젊은 날은 숲을 호령하는 커다란 나무이며 나뭇가지였다.우리의 젊은 날도 당당히 살며 노년엔 주위를 따뜻하게 밝히는 삶이 되자.

White charcoal;

once

snow on branch

흰숯

한때는

눈꽃가지

흰숯이나

한때는

눈꽃가지

 

류시화 님 번역은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원문보다 더 시적이다. 필자는 조사는 간결성을 해치는 거 같아 아래처럼 바꿔보았다. 흰 눈 쌓인, 덮힌도 어울린다.

이 숯도 한때

흰 눈 얹힌

나뭇가지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1864년 2월 28일 태어나 1909년 5월 10일 폐렴,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메이지 시대 격동기를 거친 요절한 소설가이며 번역가로 본명은 하세가와 타츠노스케이며 다른 필명은 하세가와 후타바테이로 본명의 성과 필명의 성으로 성과 이름을 만들었다.

뇌빈혈증도 앓았으며 러시아에서 귀국하던 중 벵골 만에서 죽고 5월 13일 밤 싱가포르에서 화장하여 30일 일본 신바시에 도착한다.

평생 일관된 결벽증, 흔히 말하는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천재이며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고 하층민에게 관심이 많았다. 톨스토이나 도이토예프스키의 하층민 사랑을 배운 듯하다. 우리나라 『상록수』를 쓴 심훈이 생각난다.

번역가였던 시메이는 답답할 정도로 정직한 번역은 하지 않고 어려운 부분은 과감하게 고쳐 자유롭게 번역하였다. 그래도 천성이 세심하고 주도면밀했기에 원문을 빠트리거나 바꾸는 등의 불성실한 번역은 하지 않은 점이 필자와 같다.

아래 시 원문은 과거형이지만 시는 현재형으로 함이 어울려 필자가 영번역할 때부터 현재형으로 하고 한글 번역도 현재형으로 했다. 미친 세상을 바라보다 미쳐버릴 거 같아 그러지 않으려면 미친 척하던지 미친 세상을 받아들여야 했던 시메이의 고뇌가 느껴진다.

눈 하나 원숭이 마을에서 눈 두 개 원숭이는 미친다. 미친 원숭이가 되는 거다. 우리 사회는 그런 경우가 많다. 누구의 눈이 잘못된 곳을 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 시도 두 버전으로 번역했다.

 

In mad world

If I don't go crazy

I will go crazy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

미쳐버린다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면

미쳐버린다

'않으면'은 시적이지 않은 거 같아서 진심은 미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니 '않으려'로 했다. 원문의 의미는 가정법 과거로 미치지 않았다면 미쳐버렸다이다. 내가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면 정말 미쳐버리고 말았을 거다라는 말이다.

crazy->mad->insane 순서로 미친 강도가 다르다. 크레이지는 친구에게 장난으로 너 미쳤어?나 미칠만큼 몰두했다에도 쓸 수 있는 수준이고 매드는 화가 나서 미쳤다는 의미고 insane은 병적 수준으로 가장 강도 높게 미친 거다.

중국 시에 반기를 든 것으로 시작한 하이쿠, 세계를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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