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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14] 리뷰: 앙상블 시작 단독 콘서트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2.07 08:51
  • 수정 2021.12.0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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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월요일 저녁, 역삼동 앙상블리안 홀

젊은 두 예술가의 출발을 알리는데 제격이다. 거기에 시로 음악을 짓겠다는 시작(詩作)이니 이름부터 참 좋다. 2020년 작곡 & 피아노의 이서연과 정가의 조윤영이 결성한 앙상블 시작의 첫 단독 콘서트가 강남구 역삼동의 앙상블리안 하우스콘서홀에서 12월 6일 월요일 밤에 열렸다.

좌로부터 작곡 & 피아노의 이서연, 대금의 오병옥, 정가의 조윤영 그리고 첼로의 이유라

서울 강남의 한복판, 뱅뱅사거리의 르메이에르 건물 2층에 이런 자그마한 공간이 있는지 몰랐다. 사실 요즘은 무심코 지나쳐서 그렇지 곳곳에 이런 작은 공연장, 갤러리, 북카페, 문화상점 등이 숨겨져 있다. 앙상블리안이라는 단체도 앙상블 시작 덕에 알게 되었는데 청년 음악가들의 아지트요 시작(始作)점으로 적절한 장소요 단체 같았다. 나중에 기회 되면 앙상블리안에 대해서 다시 취재해서 올리기로 하고 이번 평의 주인공인 작곡가 이서연으로 돌아가보자.

역삼동 동부교회 앞의 르메이에르 건물 2층에 위치한 앙상블리안 홀

오늘 발표한 총 8개의 곡을 작편곡한 작곡가 이서연은 긴 전주를 가진다. 그리고 끝은 꼭 고음의 쨍하는 반전의 화음 또는 아르페지오다. 3부분으로 구성된 <완화삼>에 A에서는 마디마다 화음이 바뀐다. B는 셋잇단음표의 진행화음의 연속이요 C에서는 A와는 다른 간소함이 고음으로서 가볍게 드러난다. 유일하게 인성이 빠진 생황(오병옥)과 첼로(이유라)의 <동녘바다> 2중주에서는 생황이라는 목관과 첼로라는 현이 반음계로 점층적으로 상승한다. 첼로의 분산화음에 대위법적으로 서로 독립적으로 흐르더니 끝부분에 가서야 두 성부가 마치 다닥다닥 뭔가에 점철되고 붙어있어 서로 팽창하려는 기운이 넘치면서 어디론가 가고자 하는 이동성을 가진다. 아~~그러고 보니 그전 곡 윤동주 시의 <산골물>에서의 마지막 구절이 '바다로 가자'니 이건 서로 연계되어 작곡가의 심상이 그대로 옮겨져 온 배치다. <산골물>에서의 긴 첼로의 전주 후 맑게 이어지는 정가는 왜 우리 말엔 우리 식의 발음과 정가가 안성맞춤인지 여실히 증명한다. 오른손에 울리는 맑고 깨끗한 고음의 수원지는 산골물이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대답한다. 외로움... 아무도 없는 묘지의 달밤은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더군다나 알지도 못하는 무명의 사자(死者)들의 묘비 앞에 있다면 그 느낌은 어떠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이서연이 역시 폐부를 찌르듯이 차가운 악풍으로 답을 해준다. 거기에 단소가 더해지니 '전설의 고향'이 따로 없다. 단락의 구분에 따라 음악 분위기가 바뀌는 건 정호승 시인의 <겨울꽃>에서도 여지없다. 다만 셋째, 넷째 구절인 "붉은 땅~가득찬 세상"까지는 전형적인 피아노의 반주에 편안한 멜로디가 흘러 퓨전사극의 BGM으로 쓰일 정도의 멜로디가 나왔다. 이서연은 당연히 보편적인 선율을 끄집어 낼 수 있다. 고가신조인 <북천이 맑다커늘-어이 얼어자리>와 <샐별지자>는 다른 곡들에 비해 편안했다. 김기수(1917-1986)의 원작을 차용하고 편곡했다. 역시 30대 초반의 의욕충만한 샛별인 아닌 힘을 뺀 대가의 풍모에 덜어냄과 여백의 미로 대가의 풍모를 여실히 들어낸다. 그게 작곡가 이서연이 가야 할 음악적 길이다. 첫 곡인 <나그네>도 정가의 조윤영과 함께 작곡을 해서 그런지 절충되고 온화하다. 어떤 분야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공통점은 태연자약과 몸과 정신에 힘을 뺀 상태다.

앙상블리안의 기획연주시리즈: 앙상블 시작의 단독 콘서트

조지훈이 먼저 박목월에게 보낸 <완화삼>과 그에 대한 화답인 <나그네>의 시가 순서를 달리하여 <나그네> 먼저 그리고 <완화삼>의 순으로 연주되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에 입각한 서편으로 그리움이 격조 높게 흐른다. 이렇게 고고하면서도 인간의 품위를 다했던 선조들에 비해 지금 후손인 우리들은 어찌하여 저질이 되어버렸는가! 내편네편 갈라져 서로 중상모략과 인신공격 거기에 날조된 거짓말과 공격이나 하고 서로에게 상처와 증오만 심어주며 아비규환이 따라없는데 옛 선비들의 문향에는 멋과 풍류가 살아 숨 쉰다. 윤동주의 시는 또 어떠한가! 순수의 결정체이다. 왜 작곡가들이 윤동주 시의 음악화를 선호하고 도전하는지 읽어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국악과 양악의 조화... 아니 요즘 시류에는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이서연의 음악이 선조들의 우아와 낭랑함을 계승, 음악을 짓고 연주하는 본인부터 편안하고 행복하려면 현대음악적인 요소를 싹 빼어버렸으면 좋겠다. 현대 입시음악잔재인 반음계 베이스만 없어더라면...덕분에 달빛에 깨어 빈 배저어 계속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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