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울 밑
꽈리 누나
길섶
까마중 형
오늘도 빨강 코
씀바귀 아부지
뉘엿뉘엿 해는 지고
올갱이 식구들
아차차
니저발엿고자
진한 초록 사발
익모초 엄마
시작 메모
그게 이제 저 육십 년 전이구나. 누이들은 울타리 꽈리나무에 꽈리를 따서 입에 넣고 불며 놀았다. 늘 배가 고픈 형과 우리들은 뻑하면 길 가 까마중이나 보리밭고랑 깜부기를 훑어 먹기 일쑤였다. 소주에 절어 살던 아부지. 개다리소반에 달랑 그 쓰디쓴 씀바귀 무침 한 종지를 안주로 삼는데 취하면 새빨갛게 달아오르던 코가 가장 무서웠다. 아직도 선하다. 뉘엿뉘엿 해거름 저녁이면 냇가에 돌막 위로 조물조물 올갱이들 오르고, 또 가난한 집구석에선 예닐곱 식구들 오물오물 모여 정구지 올갱이국을 저녁 반찬으로 끓여 먹었다. 구멍 숭숭 뚫어진 런닝구 바람 엄마는 심하게 속앓이를 앓았다. 밥맛이 없고 소화는 안 되고 늘 익모초즙만 훌훌 사발째 마셨다. 그 이빨빠진 사발에 담긴 초록 익모초즙은 세상 어떤 초록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진초록이었다.
<서방님 병 들여 두고 쓸 것 없어 / 종로 저자에 달래 팔아 / 배 사고 감 사고 유자 사고 석류 샀다 / 아차 아차 이저고 오화당을 니저발여고자 / 수박에 술 꽂아 놓고 한숨계워하노라>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 아낙네 하나가 부르짖기를, <서방은 병이 들었고 약이나 의원은 쓸 수도 없고, 하릴없이 달래 나물 따위나 뜯어 종로 장터에 내다 팔 수 밖이. 시원한 수박 화채나 한 대접 해 먹이려 이것저것 다 샀는데 아차차, 잊어버렸네, 당원 사는 걸 그만 잊어버렸구나. 수박에 숟가락 꽂아 놓고 한숨짓는구려> 저 아낙어쩌자고 그걸 잊어버렸누. 안타깝다. 내 인생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시들, 아니다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로 이 사설시조를 든다.
아아, 어머니. ‘니저발엿고자’, 잊어버렸고나, 아니다 잊어버리고자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