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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속 붕어빵처럼 꺼내 먹을 스낵 시! 임승유 시인의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이운주 전문 기자
  • 입력 2021.11.1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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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속 '휴일', '유원지' 작품 추천

출처: 알라딘
출처: 알라딘

  어느새 지독한 한파가 찾아왔다. 낮은 초가을처럼 따뜻하다가도 해가 지면 칼바람이 옷 속을 칼처럼 스며드는 계절. 위드 코로나가 발표되며 공연도, 등교도, 출근도 조금씩 규제가 풀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거리는 얼어붙었고, 우리의 마음 역시 전으로 돌아가기에는 스트레칭이 덜 끝났다. 퇴근길에 만나는 익숙한 포장마차 속, 따끈한 어묵국물처럼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스낵 시가 돌아왔다. 든든한 겨울을 위해 짧은 시 두 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임승유 시인은 2011년 등단해 첫 번째 시집인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문학과지성사, 2015)를 출간했다. 이후 2016, 김준성 문학상 및 현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 시집에는 휴일7편의 현대문학상 수상작을 수록했다. 임승유 시인은 일상 속에 있는 언어들을 사용해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박상수 시인은 사건을 기술하는 화자의 태도가 시인의 문학적 색깔을 결정한다고 평가했다. 작가의 시 세계를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자. 

 

휴일이 오면 가자고 했다.

휴일은 오고 있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너는 오고 있지 않았다. 네가 오고 있지 않 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는 채로 오고 있는 휴일과 오고 있지 않는 너 사이로

풀이 자랐다. 풀이 자라 걸 알려면 풀을 안 보면 된다. 다음 날엔 바람이 불었다. 풀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모르지 않는 네가

왔다 갔다는 걸 이해하기 위해 태양은 구름 사이로 숨지 않았고 더운 날이 계속되 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휴일>, 13p.

 

  예술가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소재일 것이다. 임승유 시인은 특별한 곳에서 소재를 찾지 않는다. ‘휴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일주일에 두 번씩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시인은 일상적인 소재인 휴일을 대상에 접목해 집필하고 있다. 시 속 화자는 휴일에 오는 대상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고, 멍하니 휴일과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그 두 시어 사이로 어떠한 감정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던 중 풀이 자란다. 이 작품 속 풀은 화자의 기대와 희망이라 판단했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해도 불쑥불쑥 돋아나는 마음이 풀의 모습과 닮아 있다. 풀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기다리지 않으려 했지만 화자의 마음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결국 풀을 또 보고야 마는데, 대상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대상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 를 알게 된다. 풀이란 시어에 화자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시 속 화자는 기다리는 대상을 만났을까? 후반부 마지막 연을 보면 아님을 예상할 수 있다. ‘왔다 갔다는 걸 이해하기 위해 태양은 구름 사이로 숨지 않았고 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이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우리가 이별할 때, 이별한 날 먹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것 역시 슬프고 비참하지만 내 마음과 달리 너무 화창하고 맑을 때 감정과 날씨가 대비되어 더욱 비참함을 느끼고는 한다. 휴일과 함께 상대방은 다녀간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다녀간 곳이 화자의 공간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화자는 그 사실을 직면하기 위하여 일부러 구름 사이로 숨지 않고 현실을 직면한다. 뜨거운 날, 휴일은 또 다가오는데 그는 없고 땡볕이 내리쬐는 이미지만 연상된다. 나와 마음이 같지 않은 이,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까지 해석 가능한 이 시는 일상적인 소재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다음 시를 다시 한번 감상해 보도록 하자.

 

남들도 다 가니까

처음 와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기로 했지 이 도시에서 아는 곳은 여기밖에 없고

남들도 처음이겠지 혼자는 그러니까 같이 왔겠지 모두가 혼자였다면 너는 혼자 가 지 않았을까

혼자 가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끝으로 밀어내며

앉았다 가면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듯 앉아 있으면 이 길은 아무 데서도 끝나지 않 을 거라는 믿음으로

조성되고

<유원지>, 14p.

 

  상당히 짧은 작품이다. 두 번째 시를 읽으며 임승유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작가가 제시한 그 배경, 시어에 대한 독자 본인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시에선 외로웠던 나의 휴일을 떠올리게 되었고, 두 번째 시에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원지를 내 시선으로 한 번 더 바라보게 했다. 아마 이는 공감에서 오는 연상법일 것이다.

  어느 지역이나 유원지가 있다. 이 역시 일상적이고 흔한 소재이지만, 임승유 시인은 이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 유원지에 온 사람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인상 깊은 구절은 바로 남들도 처음이겠지 혼자는 그러니까 같이 왔겠지 모두가 혼자였다면 너는 혼자 가지 않았을까 혼자 가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끝으로 밀어내며였다. 유원지에 혼자 오는 사람은 처음 온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예상, 그리고 그 작가의 상상력을 독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승유 작가의 낯설게 하기 방법은 결코 낯설지 않은 경험임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이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방문하는 유원지, 화자는 외롭게 혼자 서 있다. 심지어 이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발끝으로 밀어낸다.

  우리는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껴 본 경험이 분명히 있다.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한참 웃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의 본질이나 삶의 이유 같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시 속 화자는 마치 이 도시에서의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비단 이방인이라는 설정이 이 유원지 속을 넘어 낯선 타지, 세계, 다른 사람들 틈에서 특별한 나로까지 시가 확장된다는 점에서 이 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두 작품의 일상적이고 외로운 이미지의 공통점을 통해 시인을 분석해 보았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독자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면, 그것은 이제 비단 개인적인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모여 여럿의 경험이 된다면 시 속 화자처럼 단지 외로운 이방인의 형태로 남는 이는 적어지지 않을까?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집필법이 잘 드러난 시집을 추천하고 싶다.

  추워지는 겨울, 손발은 얼더라도 뜨거운 감성을 지닌 가슴을 잃지 않고 손잡고 만날 봄을 기다리자. 바로 여기서, 우리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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