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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04] 리뷰: 한국페스티발앙상블 제72회 정기연주회 '오르페오의 노래'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1.15 09:20
  • 수정 2021.11.1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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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4일 일요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만추의 휴일 오후,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초대를 받고 바삐 채비를 챙겨 음악회 시각에 착석한 (사)한국페스티발앙상블의 제72회 정기연주회의 테마는 '오르페오의 노래'라고 한다. 이미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이 문학과 음악을 엮은 시리즈로 니체, 셰익스피어, 브레히트를 프로젝트를 거행한 걸 아는데 이번의 오르페오는 역사상 근대 오페라의 효시를 이루는 원천으로서 위 3명의 극작가 못지않게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소재이다. 오르페오뿐만이 아니다. 그리스 & 로마 신화의 신들이 뮤즈로서 서양음악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감을 주었다.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의 '오르페오의 노래'에서는 몬테베르디부터 베토벤, 드뷔시를 지나 한국의 강은수까지 근 600년간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무대인사하는 카운터테너 이희상과 한국페스티발앙상블 단원들

첫 곡인 드뷔시의 <시링크스>(Syrinx)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신 판(Pan)이 부는 갈대 피리다. 스토커 판의 치근거림에 지쳐 연못으로 뛰어들어 갈대로 변신한 요정을 꺾어 만든 팬 플루트가 바로 시링크스다. 시링크스를 플루티스트 이주희가 암보로 연주했다. 그녀의 고혹한 매력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관객 그리고 장소의 공명과 기류를 흡입하면서 드뷔시의 시링크스를 다면적인 감각으로 환상적으로 펼쳤다. 곡이 끝나자 도도하게 눈을 내리깔고 퇴장하는 그 모습까지 연출인 거 뻔히 눈치챘지만 필자가 판이 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싶게 만들 정도로 관능적이었다. 다음은 브리튼의 오보에 솔로를 위한 <오비디우스의 6개의 변용>이다. 드뷔시가 횡으로 부는 플루트였다면 브리튼은 종으로 부는 오보에라는 악기 메커니즘의 차이, 프랑스와 영국이라는 다른 국민성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고대의 불멸자들이 색깔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오보에의 이현옥 역시 플루트의 이주희와 아울러 목관의 진면목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솔로로 취주악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시 이주희가 나와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나오는 유명한 <정령들의 춤>을 재현했다. 플루티스트 이주희는 언제 독주로 피아노와 함께 플루트 곡들을 다시 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연주자다.

오르페오의 노래 포스터

쇤베르크가 실내악으로 편곡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절정에 오른 연주자들의 기량이 한껏 앙상블 안에 용해되고 융합되어 닭살이 돋을 정도의 섬세한 뉘앙스를 펼쳐 보였다. 아는 선율을 들으니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앞의 오보이스트 이현옥이 생소한 브리튼의 독주곡을 얼마나 잘 소화해 내었는지... 지휘를 맡은 박광서도 원래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지휘 도중 때리는 종소리가 겉돌지 않고 음악 안으로 파고들었다. 현 파트는 밸런스 조절이 비상했지만 그중에서 퍼스트 바이올린을 맡은 악장 정준수의 바이올린의 음색이 너무 탄력 있고 화려해 마치 옛날 크리스티앙 페라스 (Christian Ferras)의 재림 같았다. 음악인에게 생물학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는데 그걸 아직 절감하기엔 이르다. 음악회 뒤에 다시 한번 놀랄 시간이 있었으니... 세컨드 바이올린의 김은식은 비올라의 김혜용과 짝을 이루면서 배경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11개의 악기들이 자신만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앙상블을 만들어갔다. 황홀한 목관, 융단 같은 현 파트에 건반악기인 피아노가 보완된다. 드뷔시 음악에 하프를 뺄 수 없다. 쇤베르크도 하프만은 양보 못했다.

강은수의 <기러기 날개에 보내는 세 개의 오르페오 노래>는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의 기획연주 'Orfeo in Music'의 위촉작품인데 2021년에 개작 초연되었다. 40대의 나이게 사춘기 아이 둘을 데리고 독일 유학을 떠나 기러기 가족이 된 심정과 일상을 자작시에 담으면서 마음을 달랜 3개의 시에 플루트, 바이올린과 하프로 되어 있는 곡이었다. 어쩌면 오늘 음악회 주제와는 가장 떨어진 오르페오가 아닌 인간 강은수의 개인의 일기이자 목소리, 내면의 고백이었다. 고국과 가족을 향한 사무친 정과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애달픔의 탈출구였다. 첫 곡 '아침비'부터 c-minor 스케일 이후 카운터테너 이희상의 한 맺힌 절규가 독창된다. 시의 가사와 내용이 음악에 완전히 함몰되어 버렸다. 바이올린과 플루트 거기다가 하프라는 고음에 특화된 악기들이 각각 자기 목소리를 내고 독립된 주체로 자리매김하면서 정령들의 출현과 산화같이 시와 목소리에 맴돌다가 사라지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오르페오라는 에우리디체를 만나기 위해 지옥의 문을 사람과 강은수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동일한 감정의 소유자였고 사랑하는 대상을 갈구하는 마음은 같으니 결국 오늘의 주제와도 때려야 땔 수 없다는 연관성으로 밀착됨을 공감하게 되었다. 2악장에서의 col legno battuto와 플루트 리듬의 합은 심장을 두드렸고 3악장에서는 국악풍의 선율과 장단이 엄연히 살아서 유기적이 되면서 얼씨구 절씨구와 합을 이룬다. 3개의 악장 모두 조성의 범주 안에서 헤테로포니적이다. 마지막의 '달마음 그마음'에서 지금까지의 파편적 행보와는 다르게 만남을 염원하는 심정을 담은 듯이 하프의 긴 통로를 지나 G음으로 종결된다.

(사)한국페스티발앙상블 제72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

바이올린의 정준수에서 노익장을 느꼈다면 몬테베르디 노래를 위해 등장한 소프라노 이춘혜에서 한 번 더 놀랐다. 이번엔 크리스타 루드비히(Christa Ludwig)였다. 성량과 음정은 흔들림이 전혀 없이 탄탄하고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에서의 종지 후 숨 막히는 여운을 깨고 박수가 터져 나온 것처럼 소프라노 이춘혜의 자태에 나도 모르게 브라바가 터져 나왔다.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이라는 위명에 걸맞게 다년간의 노하우에 입각한 주제에 연관을 맺은 문헌적이고 콤팩트한 프로그램과 연륜을 풍기는 연주력에 이주희, 이현옥, 오병철, 김주현 등의 신구 노소 조화까지 one team이라는 앙상블의 절대 덕목을 충족한 음악회였다. 여기에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금슬이 좋기로도 유명한 청혼의 상징인 기러기까지... 동서양까지 교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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