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척의 조선 수군이 100척 이상의 일본 배를 침몰시켜
철쇄이야기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3] 해남·진도, 명량대첩의 전승지
10월 23일(토) 평화철도는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1박 2일 일정의 현장 탐방을 진행했다. 1편 통영에 이어 2편 여수 그리고 3편에서 명량대첩의 현장인 해남과 진도의 울돌목을 찾았다.
지난 2편에서 ‘이순신 광장’에 관한 사진 자료 중 몇 가지가 빠져있어 3편 앞부분에 올리고 살펴본 뒤 이어가고자 한다. 이순신 광장에는 벽을 세워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공적을 기리고 있는데, 의병의 활동과 공적들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지난 2편의 ‘진남관 유물전시관’에서 유물 관람하는 사진을 하나 추가한다.
9. 명량대첩 기념전시관
명량대첩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 9월 16일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일본의 정예함선 133척이 바다를 덮었고 예비 함대 70척도 뒤를 따르는 가운데, 불과 13척의 조선 수군이 100척 이상의 일본 배를 침몰시키고 조선이 압승한 해전이다. 한산대첩과 더불어 사상 최고의 해전으로 꼽히는 이유다. (일설에는 133척의 일본 함선에 맞서 대장함 1대만 싸웠고 나머지 12척은 대장함 뒤에 있다가 일본 함들의 패색이 짙어지는 가운데, 공격을 하기 시작해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여, 명량대첩은 사실 133:1의 해전이었다고 한다.)
명량해협(鳴梁海峽)은 울돌목이라고도 하며,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의 화원반도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있는 해협으로, 길이 약 1.5km이며, 폭이 가장 짧은 곳은 약 300m 정도가 된다고 한다. 밀물 때는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서해로 빠져나가 조류가 5m/s 이상으로 매우 빠르게 흐른다고 한다. 이를 이용하여 정유재란 당시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이 승리하였다.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매우 커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고도 불린다. 유속은 약 10노트(10knot, 시속 20km 정도)라고 한다. 실제 울돌목 현장에는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볼 수 있도록 하늘 산책길(스카이 워크)이 설치되어 있다. 투명한 바닥 유리창을 통해 울돌목의 빠른 유속으로 인한 소용돌이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명량대첩 기념전시관에는 명량대첩과 이순신 장군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한 켠에는 「철쇄이야기」‘이충무설삭살왜처(李忠武設索殺倭處)’에 관한 소개글이 있는데 이 글에는 “열세한 병력을 지휘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휘하의 군관들은 위장전술로써 장애물을 방어무기로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촐쇄라는 쇠사슬로 만든 장애물을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795년 간행된 『이충무공전서』권14에서 철쇄를 이용한 기록이 있다. ‘명량은 우수영에서 3리 떨어진 곳에 있다. 물살이 세차고 빠르며, 파도 소리는 천둥 치는 소리 같다. 명량해협 양변에는 돌산이 빽빽이 몰려 서 있으며 항구는 매우 좁다. 충무공께서는 쇠사슬을 수중에 횡절(橫截)하였는데, 명량은 마치 호리병의 목처럼 좁아 적석이 여기에 이르면 철삭에 걸려 전복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양변 바위 위에는 철삭을 박았던 구멍이 지금까지도 완연하며, 사람들은 모두 이곳을 가리켜 이충무공이 쇠사슬을 설치하여 왜적을 몰살시킨 곳이란 의미의 「이충무설삭살왜처(李忠武設索殺倭處)」라 부른다.‘ 이 외에도 『해남현지(海南縣志)』는 철쇄를 설치했던 말뚝 구멍이 남아 있다고 하며 사실성을 부여하였다. 1751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해남현지를 인용하고 있다. 이순신 막하에서 활동한 인물 조응량은 『호남해동삼강록』에서 조응량이 쇠사슬, 즉 철쇄를 명량에 걸어 일본 수군 적선을 유인해 쳐부수었다고 하였다. 명량해전 참전한 인물 중에서 철쇄기록을 남긴 고주 정운희(丁運熙) 『고주집(孤舟集)』, 『이통제 순신 명량대첩을 축하하다』에 철쇄가 등장한다.”라고 기록되어 그날 ’명량대첩‘의 승리의 이유를 절로 상상하게 하고 있다.
전시관의 자료들을 관람한 우리 일행은 전시관 앞의 울돌목을 돌아보고 진도대교를 건너 맞은편 진도타워 인근으로 이동했다.
10. 명량대첩 승전광장
우리 일행은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 명량대첩 승전광장으로 이동해 미리 기다리고 있던 곽길성 진도 농민회장의 안내와 해설을 들으며 명량대첩의 현장을 감상했다. 곽길성 농민회장은 “저곳 해남에서 이곳 진도 바다 사이에 (정유재란 당시) 쇠사슬 밧줄이 연결되어, 봉화 를 보고 쇠사슬 밧줄을 들어올려 이곳을 지나는 왜구의 함선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침몰시키는 작전도 진행되었다.”고 명량대첩 기념전시관 한 켠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소개했다. 또한 곽길성 농민회장은 현장탐방 참가자들을 위해 전어회와 멍게, 곡주를 준비해와 출출한 배를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곽 농민회장은 우리의 노래 요청에 진도 아리랑을 맛깔나게 불러 화답했다.
이곳에서 우리의 현장 탐방 일정은 모두 끝났다. 곽 농민회장은 떠나는 버스까지 올라와 살갑게 배웅하고 하차하여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리는 목포 고하도를 경유,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천안논산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로 밤 9시 양재역에 도착해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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