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역사평화기행 2] 여수, 이순신대교와 삼도수군통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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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역사평화기행 2] 여수, 이순신대교와 삼도수군통제영
  • 강승혁 전문 기자
    강승혁 전문 기자 wonil21@peacerailway.org
  • 승인 2021.11.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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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대교는 계획 초기에 '광양대교'로 불렸다
이순신 광장의 실물 크기로 재현한 '거북선'
이순신 광장의 한 쪽에는 '여수 평화의 소녀상'도 전시되어 있다
이 충무공의 효성이 지극함을 느낄 수 있는 곳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굴강(屈江)’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2] 여수, 이순신대교와 삼도수군통제영

 

1023()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이하 평화철도)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의 다섯 번째 순서로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를 진행한 후, 12일 일정의 현장 탐방을 진행했다. 1편 통영에 이어 2편에서는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영)이 있는 여수를 돌아보았다.

 

4. 이순신대교와 여수 묘도

이순신대교는 계획 초기에 '광양대교'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20072월부터 4월까지 전라남도에서 열린 전라남도 내 '주요 장대 교량에 대한 명칭 공모'를 통해 '이순신대교'라는 현재의 이름이 정해졌다. 이순신대교라는 이름은 다리가 건설된 여수시 묘도와 광양시 금호동 사이의 해협이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이 펼쳐진 노량 해협과 인접하고,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곳이자 주 활동 무대 중 하나라는 역사적인 상징성의 이유로 붙여지게 되었다. , 2개의 주탑 사이의 거리(주경간)는 이순신 장군의 탄신해인 1545년을 기리기 위해 1,545m로 설계하였다고 하며, 이 길이는 201012월 기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전 세계적으로는 네 번째에 해당한다고 한다.

여수시 묘도에서 바라본 이순신대교의 야경, 건너편에 보이는 도시는 광양시.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시 묘도에서 바라본 이순신대교의 야경, 건너편에 보이는 도시는 광양시.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시 묘도, '여수 국가산단 진입도로 조감도' 앞에서 지역 설명을 하고 있는 주종섭 여수시의원(좌측 양복 입은 사람) / 사진 제공=정성희
여수시 묘도, '여수 국가산단 진입도로 조감도' 앞에서 지역 설명을 하고 있는 주종섭 여수시의원(좌측 양복 입은 사람) / 사진 촬영=정성희

 

여수시 묘도에서 주종섭 의원의 해설을 들은 우리는 숙소인 만성리 엑스포펜션으로 이동해 여독을 풀었다. 펜션의 여사장은 근거지는 경기도 군포이고 경기도의원을 역임했으며 이곳 여수시 만성리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여수시 만성리 해변은 검은모래로 유명한 곳으로 검색된다. 밤에 바다를 걸어보니 둥글고 환한 달과 그 달빛에 물들은 바다의 비경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누가 여수 밤바다를 노래했을까. 다시금 여수 밤바다가 헛말이 아니었음을 보게 되었다.

 

여수시 만성리의 아침 바다 광경 / 사진 촬영=강승혁
여수시 만성리의 아침 바다 광경 / 사진 촬영=강승혁

다음날 아침 8, 우리 일행은 아침식사를 하러 이순신광장 인근의 서울해장국식당에 들렀는데 우리 일행을 포함하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려 줄을 서서 대기하는 진풍경을 보고 토요일 아침시간에 식사 대기줄이...”라며 수근대기도 했다.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식당에서 5분 거리의 진남관으로 이동했는데, 본관이 공사중이어서 입구의 망해루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유물전시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진남관 공사는 20225월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진남관은 현재 공사중으로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입구에서 촬영했다.
진남관은 현재 공사중으로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입구 '통제문(統制門)' 앞에서 촬영했다. / 사진 촬영=강승혁

 

5. 진남관

진남과 입구 안내문에는 진남관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수군의 중심기지였다. 여수지역에서 목재를 조달하여 건축하였으며, 정면 15, 측면 5칸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단층 목조건물 중 가장 크다. (국보 301)“고 적고 있다.

진남관 입구 안내문에서 해설하는 정성희 소장과 참가자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입구 안내문에서 해설하는 정성희 소장과 참가자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또한 전라좌수영-조선 시대 남해안 방위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여수에 자리 잡고 있던 수군영이다. 1479(성종 10) 처음으로 설치되었고, 1895(고종 32)에 없앴다. 현재 그 모습을 거의 잃은 채 성곽의 극히 일부와 진남관만이 남아있다. 조선 후기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전라좌수영 성안에는 건물 80여 동, 민가 2024, 우물 9, 연못 1곳 등이 있었다고 한다. 봄이면 주변에 매화가 만발하여 매영성(梅營城)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삼도수군통제영-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의 수군을 이끌고 경상도 해전에서 여러 번 승리를 거두어 1593(선조 26)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수군을 다스리는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함으로써 전라좌수영이 1601(선조 34)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남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의 '망일루'를 통과해야 한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망해루'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에 대해 설명하는 글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에 대해 설명하는 글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공사중인 진남관 옆 공간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공사중인 진남관 옆 공간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공사중인 진남관은 볼 수 없지만 입구에 있는 '유물전시관'에서 진남관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공사중인 진남관은 볼 수 없지만 입구에 있는 '유물전시관'에서 진남관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노량해전 당시의 전황을 보여주는 조형물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광장 교차로에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광장 교차로에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6. 이순신 광장과 거북선

우리는 진남관의 아쉬운 발길을 이순신 광장으로 옮겼다. 이순신 광장에는 이순신 일대기를 보여주는 조형물들과 임진왜란의 과정 등을 담은 벽화가 있다. 또한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는 거북선을 볼 수 있다.

이순신 광장의 거북선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광장의 거북선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광장은 여수시 중앙동에 있으며 여수시 종화동 인근 구항이 공원으로 조성된 것으로, 지난 2001년부터 5년여간의 방파제, 방파호안, 매립지등의 공사를 마친 끝에 여수시민의 시민 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각종 해양 관련 행사와 공연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어 볼거리가 많은 공원이기도 하다. 특히 돌산대교와 장군도 등을 조망권 내에 두고 있어, 공원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야자수 아래 벤치나 돌의자에 앉아 넘실대는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의 조화로운 풍경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고 여수시는 소개하고 있다.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 '이순신 광장'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또한 이순신광장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자료와 당시 의병에 대한 소개 등 역사적인 현장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고 하고 광장은 이순신 장군이 작전 계획을 세우고 군령을 내린 진남관 등 주변 유적지와 연계한 역사 문화 관광벨트의 시발점으로, 매년 5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국문화축제인 '거북선 축제'가 열린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구조물은 원형에 가깝게 재현한 거북선이다. 단순히 외형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내부에서도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거북선 내부로 들어가면 수군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임진왜란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느낄 수 있으며 간단한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거북선은 세 척으로 전라좌수영, 방답진, 순천부 선소에서 한 척씩 건조했으며, 거북선이 있는 위치는 바로 전라좌수영 선소가 있던 곳이라며 매주 토요일에 상설공연으로 수군출정식, 강강술래, 시립합창단 공연 등이 열린다.“고 덧붙였다.

 

이순신 광장의 한 쪽에는 여수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순신 광장의 한 쪽에 세워져 있는 여수 평화의 소녀상 조각.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광장의 한 쪽에 세워져 있는 여수 평화의 소녀상 조각.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장군의 어머님이 사시던 곳의 입구 전경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장군의 어머님이 사시던 곳의 입구 전경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7.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

이순신 광장에서 여수 시청을 지나 구여수로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웅천동 송현마을이 나온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닷가 마을과 산아래 마을이 나누어 자리 잡고 있고, 마을 입구에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이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있다

이곳이 임진왜란 중인 1593년부터 1597년까지 5년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인 변씨 부인과 부인 방씨가 충청 지방의 전란을 피하여 머물렀던 곳으로 원래 창원 정씨 문중의 집으로 임진왜란 당시 충정공 정대수 장군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집이 있었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당시 부임지였던 전라좌수영에서 가까운 이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조석으로 문안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난중일기중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어, 충무공의 효성이 지극함을 느낄 수 있다.

 

' 갑오년 정월 11

흐리나 비가오지 않음. 아침에 어머님을 뵙기 위해 배를 타고 고음천에 닿았다.

 

남의길, 윤사행, 조카와 함께 갔다. 어머니가 아직 주무시고 계셨는데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셨다.

 

기운은 없으나, 말씀하시는데 착오는 없으셨다.

 

급한일이 있어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님이 사시던 곳으로 이곳으로 매일 문안을 드렸다고 전해진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장군의 어머님이 사시던 곳으로 이곳으로 매일 문안을 드렸다고 전해진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의 주변 모습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의 대문.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의 주변 모습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의 주변 모습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의 주변 모습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의 주변 모습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최근까지 충무공 자당 기거지에는 정대수 장군의 14대손이 살고 있었으며, 지금 있는 한옥은1930년에 개축을 한 것이라고 한다. 주변에는 초계변씨 유허비(1973)와 이충무공자당기거지비, 이충무공사모비(1990)가 있으며, 당시 사용했던 솥, 돌확 등이 있어 이곳이 유적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의 주변 모습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해설사가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8. 선소

지역민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인 장소인 선소(船所)마을은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으며 조해소(朝海所)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성조대왕조 1470년 전쯤 고지도에 보면 이곳 선소(船所)는 순천부(順川府) 산하직속 선소(船所)로 명시되어 있다.

 

이때만 해도 선소(船所)에서 판옥선(板屋船), 전선등을 만들어 수군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보수도 하며 배를 대피시키기도 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소(船所)에 들어서면 누구나 수군요새임을 느낄 수 있고 선소(船所)의 중심부에는 직경 40m(면적 1,388)정도의 굴강(屈江)(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한 곳)이 있는데, 이는 선박의 노반장 또는 대피소로 쓰여진 곳이 있다.

배를 만들었던 '선소'의 전경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배를 만들었던 '선소'의 전경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다는 곳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다는 곳 '굴강'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현재 이곳에는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굴강(屈江)’, 집무 및 지휘소 기능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세검정(洗劒亭)’, 배와 관련된 창고 선소창(船所倉)’, 수군들이 머물렀던 병영막사’, 배를 매어 두었던 계선주(繫船柱)’, 칼과 창을 만들던 풀뭇간(대장간)’, 왜군들의 활동을 살피던 망해루’, 말과 수군이 훈련하던 망마기마대’, 창을 던지고 활을 쏘는 연습장인 궁장사’, 일반인의 통행금지를 표시했던 벅수(석인) 등 다양한 관련 유물들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배를 만들었던 '선소'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조선시대 배를 만들었던 '선소'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조선시대 배를 만들었던 '선소'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조선시대 배를 만들었던 '선소'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여수에서의 탐방 일정을 마친 우리들은 오전 11시 서둘러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해남으로 이동했다. 두 시간 가량을 내달린 우리 일행은 해남 명량대첩 기념전시관 인근의 임하기사식당에서 뷔페식 점심을 먹고 바쁜 일정을 이어가게 되었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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