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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역사평화기행-1] 통영, 한산도

강승혁 전문 기자
  • 입력 2021.11.05 19:59
  • 수정 2021.11.0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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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유적지 현장 탐방
세계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

[이순신 역사평화기행-1] 통영, 한산도

 

1023()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이하 평화철도)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의 다섯 번째 순서로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를 진행한 후 현장 탐방을 진행했다.

 

평화철도는 지난 41일부터 729일까지 매월 순차적으로, 1차 이북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 2차 백두산-중국 동북 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 3차 러시아 연해주-바이칼 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 4DMZ역사평화기행 강사교실을 줌 강의로 진행하고 DMZ 현장탐방을 다녀옴으로써 코로나19 위기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역사평화기행의 목마름을 적셔주었다. 이로부터 2개월이 지난 107일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첫 강의를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강의가 진행돼 102312일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 현장 탐방을 다녀왔다.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로드맵 / 그래픽=강승혁 전문 기자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로드맵 / 그래픽=강승혁 전문 기자

 

 

이날 현장 탐방은 1023일 오전 7시 양재역을 출발해 통영-여수-해남-진도 일대를 돌아보고 다음날인 24일 오후 9시 양재역에 도착함으로 종료됐다. 12일간 해설은 정성희 평화철도 집행위원장이 맡아 수고해주었다. 기행 내내 정성희 집행위원장은 특유의 입심으로 현장 탐방의 참가자들을 사로잡아 과거의 현장으로 안내했다. 한편 이번 역사평화기행에는 특별한 분들이 함께 참여해 역사평화기행의 의미를 더욱 높였다. 그분들은 누구보다 통일의 열망으로 살아온 비전향장기수 어르신인 김영식(90), 양희철(88) 두 분이다. 이 분들은 높은 연세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끝까지 함께해 일정을 소화했다.

 

 

역사평화기행 참가자들의 이동수단인 전세버스 / 사진=강승혁
역사평화기행 참가자들의 이동수단인 전세버스 / 사진=강승혁

23일 오전 7, 양재역 2번 출구에 도착한 14명의 참가자들은 대기중인 전세버스에 올라탔다. 12일의 빡빡한 일정으로 한 두사람 늦게되어 출발이 늦다면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여 사전에 시간엄수를 수차례 공지했다. 오전 7시가 넘어가는데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10분 늦는다고 함께가는 지인에게 연락을 해둔 모양이었다. 710분이 다 되어 지각 탑승자가 확인되어 출발했다. 전세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신갈휴게소에서 마지막 탑승자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토요일 아침, 차량은 많이 보였으나 우리가 탄 버스는 버스전용차선으로 통영을 향해 질주했다.

 

정성희 집행위원장은 통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사회를 맡아 함께 동행하는 각각 참가자들의 자기소개와 탐방 일정 안내 등을 진행하고 평화기행 영화를 한 편 틀어 주었다.

 

역사평화기행 참가자들이 한산섬 가는 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강승혁
역사평화기행 참가자들이 통영항, 한산섬 가는 배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강승혁

평화기행 일행은 아침부터 서두른 덕에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통영식당에 도착했다. 통영식당에서 가정식 백반을 먹었는데 반찬이 여러 가지 나와 맛있게 먹었다. 점심식사 후 한산도행 배 출항 예정시간이 40여 분 남아 통영항을 산책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상에서 해설하는 정성희 집행위원장과 경청하는 참가자들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선상에서 해설하는 정성희 집행위원장과 경청하는 참가자들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오후 1, 배를 타고 한산대첩의 현장을 찾아 이동하며 선상에서 정성희 해설가의 한산대첩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었다.

 

1. 제승당(制勝堂)

제승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조선 선조 25(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세계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룬 후, 제승당을 짓고, 선조 26(1593)부터 선조 30(1597)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아 제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유서깊은 사적지이다.

제승당의 소개글에는 선조 30(1597)에 일단 폐진되었던 제승당은 142년 후인 영조 15(1739)통제사 조경이 중건하고, 유허비를 세운 이래 1959년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하고 여러차례 보수하여 왔다.”고 하며 “1975년 정부는 경역을 확장하고 보수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정화하였다. 이곳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공의 영정을 모신 영당과 유허비, 그리고 많은 송덕비, 사정, 수루 등 부속시설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어 수려한 주변경관과 더불어 당시 조선 수군본영의 면모를 되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입구에서 조형물 초병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배에서 내려 제승당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거북선 모양의 수돗가 참가자 두 분이 손을 씻고 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옆의 한산정으로 활 쏘는 훈련장이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한산섬 제승당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2. 세병관(洗兵館)

오후 230분 한산도에서 배를 타고 통영항으로 나온 우리는 통영의 세병관을 방문했다.

세병관 입구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 입구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客舍)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 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다. 35대 통제사 김응해(金應海)1646년에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194대 통제사 채동건(蔡東健)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정면 9, 측면 5칸의 9량구조 단층 팔작집으로 경복궁 경회루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殿牌壇)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며,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徐有大)가 쓴 글씨이다.

세병관은 일제 강점기에 칸을 나누어 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수 있었다, 세병관에서 나온 우리는 다음 방문지 충렬사로 이동했다.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 입구 망일루 앞에서 기념 촬영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 입구 망일루를 지나면 지과문이 있는데 이 문을 통과해야 세병관을 볼수 있다.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 입구 망일루를 지나면 지과문이 있는데 이 문을 통과해야 세병관을 볼수 있다.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 앞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일행들.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徐有大)가 쓴 글씨라고 한다.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 내부를 해설사가 자세히 설명중이다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 내부의 구조물 등에 관해 해설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 내부 무늬와 글씨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세병관과 주변 / 사진=강승혁 전문 기자

3. 충렬사(忠烈祠)

충렬사는 소개글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께 제향을 올리는 위패사당으로 경내에는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정당을 위시하여 제향을 준비하는데 쓰이는 동재 서재와 공의 정신을 교육하였던 경충재와 사당의 사무를 맡아오던 숭무당이 있다. 외삼문 밖 참배공원 경내에는 영남 유수의 수영누각인 강한루와 유물전시관 그리고 벽용재(어록식)가 있다.”고 하며 소장 문화재로는 충렬사(사적236) 외 충렬사팔사품(국가보물 제440충렬묘비명(도지정문화재113동백나무(기념물제74)와 그 외 충렬사제향홀기·수조도병풍·팔사품도병풍·이충무공 전서·정조대왕의 사제문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충렬사 탐방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경남 사천으로 이동해 사천해전이 펼쳐졌던 사천대교 인근의 앞뜰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 메뉴는 이 식당의 일품 맛이라는 제첩국과 된장찌개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여수로 이동했다. 이순신대교를 건너 여수시 묘도에 도착한 일행을, 해가 지고 어두운 가운데, 여수시의회 주종섭 의원이 맞아주며 여수시 묘도와 이순신대교, 노량해전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통영 충렬사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충렬사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참가자들이 묵념을 올리고 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충렬사에서 참가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하고 있다 / 사진 촬영=강승혁 전문 기자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순신역사평화기행 #한산대첩 #한산도  #제승당 #통영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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