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야, 우리 열공해서 인서울하자
네가 꼬부리고 잠든 새벽 정태놈한테 온 쪽지더라
그런데 왠지 뭉클하다
관양노을실바람소리(우리 아들 아이디 한번 멋지네) 모세야
고3 올라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지나갔구나
애기 같은 얼굴로 중학교 들어간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젠 길쭉하니 마빡에도 여드름 숭숭,
아름답게 잘 컸구나
세월 참 빠르다 착하디착한 모세야
어젯밤 네게 손댄 것
용서해 다오 정말 가슴 아프다
신부님되기싫어요실용음악과갈래요
아빠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순종하던 녀석이
어려서부터 성인 사제가 되겠다고
십 년도 넘게 미사하며 기도하던
착한 모세,
네가 어째서?
작고 힘없는 이 아빠가
세상에 자랑하고 내세우는 건
아직까지 집 없는 것 시 쓰는 것
그리고 너희눔 신부님이 된다는
바로 그것밖에 없었는데
세상 그 어느 아들들보다 훌륭하고 장한 길
선택했다 기뻐했는데
내인생내가사는거여요
도대체아빠는나에대해서얼마나알아요
세상에나! 그렇구나 모세야
네 말이 옳더구나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나는 너에 대해
실은 아는 것 하나 없었구나
뭘 입고 뭘 먹고 뭘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친구들이랑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어떤 모자 어떤 신발 어떤 가수를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보는지
그저 깜깜할 뿐이더구나
열아홉 살이 다 되도록 말이다 같이 앉아
어느 것 하나 다정하게 물어본 적 없었구나
허구한 날 공부 안 한다
기도 안 한다 윽박지르기나 하고
핸드폰이나 끊고 그런 게 다였더구나
아빠가 가르치는 학생애들한테서는
그렇게도 존경하는 선생님 아껴 주는 선생님
잘 웃으시는 좋은 선생님 소리 들으면서
네겐 정작 무관심한 아버지
무뚝뚝한 아버지였구나 꽉 막히고 고지식한
그래,
음악!
해라 까짓누무거 신부님 좀 안 되면 어떠리
열공해서 인서울 좀 못하면 어떠리
관양노을실바람소리 모세야
우리 다시금 힘내지 뭐, 언제 한번
도둑고양이 지린내 나는 소공원 벤치에 앉아
아빠랑 니녀석 단둘 밤새도록 얘기 좀 해 보자
야자고 뭐고 다 때려치고 마치 불량 청소년들처럼
간만에 밤하늘 별도 한번 우러러볼 겸
사랑한당 모세야
다신 네게 손대지 않으마
시작 메모
시집을 내면서 아들래미한테 한 권 주곤 특별히 이 시는 네 시라고 읽어 보라 했다. 시를 읽어 보더니 붉어지며 한참을 말이 없다. 같은 식구끼리는 아주 작은 역사라도 들춰내면 목이 메는 법인가 보다. 마치 몇십 년 전 흑백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짠하리라. 이제 아들놈은 신부님도 되지 않았고 가수도 되지 않았고 평범한 직장인이다. 붉어지며 목이 멘 것도 잠시 시집도, 시집 속 자기 시도, ‘사랑한당 모세야 다신 네게 손대지 않으마’ 별 같은 이 한 구절도 베란다 한 구석에 훌 처박힐 게다. 서른 넘고 배 둥그스름한 그저 그렇고 그런 직장인이 별 수 있으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