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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28

윤한로 시인
  • 입력 2021.11.01 10:31
  • 수정 2021.11.0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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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학교

 

 

막살았구나 입때껏

눈물 콧물도 모르고 헛살았구나

용접하고 치킨 튀기고

물건 떼 오고 배달하고

땀 뻘뻘 흘리며 일만 알 뿐

기계처럼 돈이나 벌 뿐 그대들

애들 너무 싫어해요

요즘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안아 주고 키스하고

발 닦아 주고 데이트하고

요리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아침마다 허그를 감동을 창출하세요

부드러운 말에 표정에

우리 몸 던져야 합니다

웃는 법 우는 법 연습에

날마다 고마워요 열 번씩 하기

숙제 꼭 하서요 노력하세요

여보미안해요 아들아딸아사랑한다

 

틈만 나면 문자는 꼭 주시겠고

뭉툭한 손가락 떨쳐

떠듬떠듬 보내세요 배우세요

그저 시큰둥 눈 깜빡거리며

말할 줄도 몰라 말만 하면 꿀려라

그러시면 안 되네요

어디 물이 새고 보일러가 고장났군

이런 데만 빠삭할 뿐

자꾸 코 쉰내만 풍길 뿐 이러시면

안 되네요 그대 아버지들

마인드, 마인드를 바꿔야만 살아남습니다

애들 입 열고 아내 마음 열도록

무조건 다가가세요 먼저

다가올 때 기다리지 말고 그네들, 문 꽉

닫아걸면 혼자만 영원 외롭습니다, 그대들

 

 

 


시작 메모
아버지들, 이제 언제나 시무룩하고 잔뜩 화가 나 있다. 많은 것들 잃어버리고 묻어 버리고,잃어버리는 게 거지반 일상이 돼 버렸다. 적어도 하루에 서너 개 이상은 기억에서 빠져 나간다. 사람 이름, 나무 이름, 마을 이름, 책 이름, 물건 이름 하며. 기쁨, 웃음, 즐거움뿐만 아니라 아픔, 슬픔도 빠져나간다. 애써 찾거나 기억해 내기도 귀찮스럽다. 둬라. 마르고 시든 풀잎들에 더욱 따뜻한 눈길과 마음 쏟는 큰 존재가 존재할 게다. 영원히 외로운 우리들 아버지의 깊고 퀘퀘한 뒷방, 둔탁해질 대로 둔탁해진 꿀꿀한 시간이여. 그러고 보니 나도 아버지 학교를 수료한 지 참 오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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