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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99] 리뷰: 2021 서울국제음악제 (SIMF) 폐막음악회 - The 12 Cellist '회전목마'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0.31 09:23
  • 수정 2021.10.3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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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10월 23일부터 30일까지 '놀이동산(Amusement Park)'이란 주제로 개최된 2021 서울국제음악제의 폐막음악회의 제목은 놀이동산의 상징과도 같은 '회전목마'이다. 12대의 첼로가 회전목마처럼 돌면서 바흐부터 피아졸라까지 들려준다는 취지다.

무대인사하는 작곡가 류재준

① 율리우스 클렌겔 '12대의 첼로를 위한 찬가'

시기가 그래서 그런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로서 활동하며 현재까지 첼로 연주자에게는 '교본'으로 통칭되는 율리우스 클렌겔의 작품이 이렇게 숭고하고 경건하게 들릴지 몰랐다. 저음의 G음에서부터 상승하여 12명의 남녀노소, 인종 모두 협동하여 천상의 하모니를 들려주는 첼리스트들에 의해 울려 퍼지는 찬가가 인류화합과 용기를 선사하는 음색의 융단이었다. 어둡고 칙칙하기만 했던 현실에서 첼로의 융단을 밝고 승천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이 힐링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온 코로나 종식을 위한 단계적 일상 회복에 대한 위대한 첫발의 막연한 두려움과 희망이 율리우스 클렌겔의 인류를 위한 찬가로 그 고귀한 닻을 올린다.

② 빌라-로보스: 브라질풍의 바흐 5번 (소프라노 이명주)

잘 알려진 곡이다. 그런데 성악이 첼로 파트와 섞이지 않고 왠지 겉돈다. 첼로 역시 미세하게 밸런스가 깨진다. 소프라노 이명주는 코리안심포니와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들었었다. 남미, 브라질의 노래를 브라질풍으로 잘 소화해낼 한국 성악가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은 철저하게 이탈리아어와 벨칸토에 맞춰져 있으며 성악이라 하면 이탈리아 또는 독일로 가서 공부하고 거기서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명주 역시 독일 뮌헨에서 수학하고 모차르트, 베르디, 푸치니의 오페라를 부르는 가수다. 클래식에 정통한 피아니스트가 담배 연기 자욱한 반지하 재즈바에서 뉴올리언스 재즈를 치는 격이다.

12명의 첼리스트

③ 바흐-류재준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

한글 제목만 보고 어떤 곡인가 했는데 영문 제목을 보고야 파악이 되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사장조'의 여섯 곡을 류재준이 12대의 첼로를 위해 협주합주곡 형태로 재탄생시킨 곡이다. 1번의 프렐류드는 분열과 분산을 통해 파트 분할로 모토리크(Motorik)를 달성하였고 2번 캐논으로 시작하는 알레망드는 원곡과는 확연하게 다른 빠른 템포에 놀랐다. 처음의 놀람은 이어 쫓고 쫓기는 현란한 술래잡기에 의해 색다름으로 바뀌었으며 촘촘한 대위법적 텍스처를 훌륭하게 소화 내는 첼리스트들의 기교와 앙상블에 경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3번 쿠랑트 역시 빨랐다. 바흐 모음곡의 제목들은 모두 춤곡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비트와 리듬감이 살린 전개가 어찌 보면 바흐를 넘어 제목이 제시하는 원전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류재준의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4번 사라방드는 지극히 작위적이었는데 사라방드의 우아한 리듬과 선율이 류재준의 대선율에 비벼진다. 이쯤 되자 정경보다 배경의 덩어리들이 더 귀에 들어온다. 그건 앉은 좌석의 영향도 있었으리. 무대를 바라보고 제일 오른쪽 뒤에서 시종일관 듣다 보니(즉 이상은과 이경준의 뒤에서) 밝고 선명한 라인이라기보단 무게추가 왔다 갔다 하면서 원곡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 쪼개지고 분산되는 선율에 먹으로 류재준이 채색한다. 5번 미뉴에트에서는 파트가 더욱 내려와 12대의 첼로 중 베이스로 묵직하더니 지그를 통해 흥겹게 마무리된다.

④ 아르보 패어트: 프라테스트(형제들)

단순한 소리,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소리는 고요과 평화가 간절해서 그런지 명상음악으로 적격이다. 거룩하다. 간결하지만 꽉 차 있다. 역설적이지만 비워서 충만하다. 마지막 종지와 함께 객석에서 터져 나온 기침소리도 곡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없을 만큼 너무나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하필이면 거기서 기침을 한 관객도 연주자의 일부로 박수를 받아도 무방하다! 브라보다!)

⑤ 피아졸라: 12대의 첼로를 위한 사계 (편곡: 제임스 배럴릿)

약방의 감초처럼 첼로 콘서트에 피아졸라가 빠질 수 없다. 앞의 빌라 로보스만큼 유명한 곡이지만 역시 사람들은 소리와 내용보단 퍼포먼스에 열광한다. 연주자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악장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일반적인 바이올린 솔로 또는 피아노 트리오 등의 실내악 버전과는 달리 제임스 배럴릿의 편곡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흡입력과 쇼적인 요소도 강했다. 발 구르기는 언제나 심장을 관통하고 첼로를 손바닥이나 주먹으로 두드리는 건 바이올린이나 다른 목관악기를 가격하는 거와 다르게 임팩트가 크다. 그런데 이 또한 어떠하리. 바흐의 모음곡이 유럽의 춤곡에 기반을 두었다면 피아졸라의 근간은 탱고 아닌가. 여기에 완급조절을 포함, 이완과 수축을 능수능한한게 하면서 one for all, all for one의 팀워크를 이룬 첼리스트들의 기량과 호흡도 탁월하기 그지없다.

2021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 회전목마 포스터

여담으로 작곡가 류재준은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고마워해야 한다. 1부가 끝나고 뒤의 여자 관객 두 분이 프로그램이 없어 전자프로그램북을 보면서 1부 마지막에 했던 곡을 엄연히 무대 위의 모니터로 곡명을 처음부터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뒤죽박죽 헷갈려 피아졸라로 알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듣다 듣다 못하여 끼어들어 인터미션 전의 곡이 한국 작곡가 류재준이 편곡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전체적인 음악회의 오리엔티어링을 바로잡아 주었다. 앞의 여자 관객은 공연 전부터 여기저기 자리를 오가며 한국에도 이런 멋진 홀이 있다고 오래간만에 방문했다고, 독일의 함부르크에 최신 홀이 생겼다고 자랑하더니 그 거룩하고 집중력이 요구되는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이 울리지마자 1부에 찍었던 사진을 페북에 게시하느라 바빠 평온을 심히 깨트리더라.. 거기도 참견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의 오지랖도 정도껏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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