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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광개토태왕] 천제(天祭) - 1

엄광용 전문 기자
  • 입력 2021.10.26 11:03
  • 수정 2021.10.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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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꿈
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
제1권, 흙비 내리는 평양성

1장/천제(天祭)

 

[대하소설 광개토태왕] 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

 

광활한 들녘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흰 머리를 곧추세운 높은 산봉우리가 아득한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했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흐름을 보여주며 산봉우리 주변으로 몰려드는 안개 때문에 육안으로는 산정과 하늘을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에 태백산(太白山: 백두산)이 우뚝하게 서 있었다. 정상에 있는 천지(天池)야말로 하늘과 땅이 한 몸을 이루는 곳이었다. 천지는 사방으로 톱날 같은 능선에 둘러싸인 하늘 모양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수면 아래위로 비치는 대칭구도야말로 어느 것이 하늘이고 물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뭉게구름까지 수면 위에 둥둥 떠서 흐르는 듯 느껴질 정도로 천지의 물은 맑고 투명했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서남쪽으로 압록강(鴨綠江), 북서쪽으로 송화강(松花江), 동쪽으로 두만강(豆滿江) 크게 세 방향으로 갈라져 흐르면서 지세에 따라 제각기 용틀임하듯 유장한 곡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남쪽으로는 공룡의 등뼈 같은 산맥들이 길게 뻗으며 크고 작은 능선과 골짜기를 형성했다. 그 산맥의 좌우로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길이 주름 잡힌 산야와 어우러져 곳곳에 촌락과 논밭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편 동쪽으로 빠지는 두만강은 지세가 험해 가파른 물줄기를 만들며 급히 내달려 동해(東海)로 줄행랑을 놓지만, 압록강과 송화강은 상류에서부터 퇴적물을 끊임없이 실어 날라 양안 둔덕의 너른 땅을 옥토로 변하게 하였다. 북서쪽으로 길을 잡았던 송화강은 그 중간에 동북쪽으로 물길을 바꾸어 흐르다가 흑룡강(黑龍江)에 합류되었고, 압록강은 서남쪽으로 흘러 서해(西海)로 빠져나갔다.

이처럼 태백산의 거대한 산맥은 살아 있는 공룡의 몸통처럼 거칠게 등뼈를 세우며 꿈틀거렸고, 세 줄기의 강물은 그 상하좌우에 거느린 산과 들의 온갖 생명들을 길러내는 젖줄이 되었다. 정상에서 사시사철 끊임없이 물을 뿜어 올리는 천지는, 말하자면 그 아래 거느린 강토를 먹여 살리는 큰 그릇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빛이 오리머리의 빛처럼 푸르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압록강의 중간 지점에는, 너른 들판에 우뚝 선 석성이 자못 장엄한 기세의 위용을 자랑하였다. 사방의 성벽은 높았고, 그 위로 동서남북에 우뚝 솟은 성루가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한 품새를 나타냈다. 마치 성루는 그 양편의 성벽을 날개로 하여 곧 날아 오르기라도 할 듯, 비상을 준비하는 독수리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국내성(國內城)이었다.

때는 371년(故國原王 40년) 이른 봄이었다. 나무들이 물 오른 가지마다 연초록 새순을 참새 혓바닥처럼 내밀었고, 잎보다 먼저 핀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때가 되면 꽃봉오리가 맺힌 나무 가지로 삭풍이 몰아치고, 간혹 시커먼 구름장을 뚫고 설편이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꽃들은 그때만 몸을 옹송그려 살짝 봉오리 속으로 모습을 감출 뿐, 다시 따사로운 햇살이 어른거리면 하늘을 향해 다투어 색색의 여린 꽃 이파리들을 밀어 올리며 화사하게 피어나곤 했다.

긴 밤이 지나고 닭 울음소리가 새벽을 알리는 시각, 그림자 짙은 동쪽의 산 능선 위로 검붉은 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높고 낮은 산과 구릉도, 하늘을 뒤덮은 뭉게구름도, 화염에 휩싸인 연기처럼 붉은 기운으로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했다.

구름 사이로 솟는 해는 마치 용의 혓바닥에서 막 굴러 떨어지는 여의주 같았다. 새벽어둠이 걷히면서 산은 머리를 곧추세우고, 낮게 엎드려 있던 강물도 비로소 굽이굽이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 되면 안개 사이로 튀어나온 높고 낮은 산봉우리가 톱날처럼 날카롭게 일어서고, 들판을 휘돌아 흐르는 강줄기는 용의 몸통처럼 꿈틀대며 수면에 황금빛 물결을 수놓곤 했다. 동녘에서 솟아오른 해가 검붉은 혓바닥으로 수면을 핥아대기 시작하자, 물결은 어느 사이 은빛 고기비늘을 연신 뒤집으며 반짝반짝 빛났다.   

동녘 햇살에 쫓겨 안개가 서서히 수면을 벗어나 뭍으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할 바로 그 무렵이었다. 갑자기 성안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동문이 활짝 열리며 군사의 행렬이 쏟아져 나왔다. 성문 밖의 너른 들판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직 햇살의 위력이 들판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이른 시각이라, 간밤에 내린 흰 서리가 초목에 그대로 얼어붙어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맨 앞의 행렬은 말 위에 우뚝 선 기병대였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기병대 행렬이 성문을 다 빠져나오자, 기치를 세운 기수부대가 오와 열을 갖추어 그 뒤를 따랐다. 삼족오기를 비롯하여, 동·서·남·북·중앙의 오방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5부의 상징인 청·백·적·흑·황의 오색 깃발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그 기폭들은 바람에 펄럭이며 찢어질 듯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기수부대 뒤에는 악대가 따랐다. 맨 앞에 큰 북 세 개가 나란히 섰고, 그 뒤를 이어 악대들이 뿔나팔·소·장고·작은북·육현금·징·꽹과리 등을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든 채 대오를 갖춰 장대한 행렬로 물결치고 있었다.     

드디어 악대 다음으로 대왕 사유(斯由: 고국원왕)의 어가 행렬이 나타났다. 지붕과 차양이 있는 대연(大輦)이었다. 넓은 차양을 친 어가 위에 대왕이 올라앉아 있었고, 그 앞뒤와 좌우에서 교군꾼들이 양 어깨에 힘을 실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옆에는 창과 방패를 든 보병과 말을 탄 기병들이 보좌하고 있었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구를 깊이 내려쓴 모습은 자못 근엄하기까지 했다. 어가 뒤에 시녀들과 내관들, 대신들이 말을 타거나 혹은 걸어서 따라갔다. 다시 그 뒤로 철기병과 보병들이 대부대를 이루면서 사행(蛇行) 같은 행렬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철기병은 말과 병사들 모두 철갑으로 무장한 일명 ‘개마무사’들이었다. 그리고 보병은 칼 또는 창, 그리고 활로 간편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대열에서 한참 뒤떨어져 우마차에 식량과 마초를 실은 보급부대가 보이고, 다시 그들을 호위하는 보병과 기병이 후미를 경계하며 뒤따르고 있었다.

고구려 대왕의 전렵(田獵) 행렬이었다. 명색은 사냥이지만, 동원된 군사 규모로 볼 때 족히 1천은 넘는 대부대였다. 그 행렬은 압록강의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동녘의 구름 사이로 빠져나온 해는 어느 새 중천에 둥글게 걸렸고, 군사들의 창칼이 그 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번쩍였다. 그래서 강둑으로 이어진 길을 지날 때는 행렬이 강물에 투영되어, 물결이 마치 배때기를 뒤집는 고기비늘처럼 윤기를 더욱 빛냈다. 울긋불긋한 깃발과 갑옷 입은 군사들의 옷차림도 물속에 비칠 때는 마치 가을 단풍이 든 것처럼 총천연색으로 보였다. 그래서일까, 강물은 비늘을 세운 채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용처럼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이른 봄에는 밤낮으로 강물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되는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살짝 얼었다가 낮에 햇빛이 나면 금세 물로 변하여 굽이치는 것이었다.

어가 위에 높다랗게 올라앉은 대왕 사유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어디라고 말할 수 없는 허공에 박아둔 눈길이었다. 어느 사이 그 눈길이 하늘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강물의 수면 위에 머물렀다. 강물은 쥐죽은 듯 고요했지만, 은비늘을 반짝이며 흘러가는 것은 그 깊은 곳에서는 격랑이 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평상시에 강은 분노를 물속에 숨기고 있다가 폭풍우가 칠 때면 수면 위로 솟아올라 성난 수마(水魔)로 변하곤 하는 것이었다.   

대왕 사유는 강물의 깊이를 재듯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증오심으로 끓어오르는 울화를 애써 삭이고 있었다. 분노가 지나쳐 울화가 된 것은 내심 그 스스로 느끼는 열패감 때문이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불붙은 억압된 감정의 심지는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면서 재채기 같은 기침으로 변했다.

기침 소리를 듣고 어가 뒤를 따르던 왕자 이련(伊連)이 말을 달려 부왕(父王) 곁으로 다가왔다.

“폐하, 잠시 어가를 멈추도록 할까요? 너무 무리하시면 옥체에…….”

이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왕이 짧게 답했다.

“괜찮다.”

“아직 바람이 맵습니다.”

“글쎄 괜찮다는데 그러는구나.”

대왕의 언사에는 귀찮은 듯한 짜증기가 묻어 있었다.

이련은 어가에서 물러나 다시 묵묵히 뒤를 따랐다. 그는 아직 열세 살의 나이지만 부왕의 심중을 어느 정도 헤아리고 있었다. 이번 전렵 행차가 어쩌면 대왕에게는 마지막 모험의 길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 것은 일종의 오기일지 몰랐다. 마지막 남은 대왕의 자존심이 아닐까, 이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왕자 이련의 짐작대로, 대왕의 편치 않은 심기는 이마 위에 깊은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죽어서 선왕 앞에 어찌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선친 미천왕(美川王)의 얼굴은 언제나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얼굴은 화인처럼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숱한 날과 밤의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암각화처럼 뼈아픈 상흔으로 오래오래 남아 있었다.

재위 40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대왕 사유는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공적을 세우지 못했다. 연나라(前燕) 모용황(慕容皝)에게 당한 수모만으로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부왕인 미천왕 때만 해도 다수의 주변국을 병탄하여 고구려의 지배하에 두고 있었다. 현도군(玄菟郡)을 공략하고, 요동(遼東)의 서안평(西安平)을 손아귀에 넣었으며, 낙랑군(樂浪郡)과 대방군(帶方郡)을 굴복시켰다.    

그러나 미천왕의 뒤를 이은 대왕 사유는 연나라 모용황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다. 재위 12년에 고구려는 연나라 대군의 침공으로 환도성을 내주고, 부왕인 미천왕의 시신까지 도굴 당했다. 뿐만 아니라 태후(周氏)와 왕후도 연나라 군사들에게 나포되어 볼모로 잡혀갔다.

전쟁 다음 해인 343년 2월에 대왕은 왕제 무(武)를 연나라에 보내 모용황에게 진귀한 보물을 바치며 부왕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간청했다. 아울러 볼모로 있는 태후와 왕후도 돌려보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모용황은 일단 미천왕의 시신만 돌려보냈다. 결국 연나라에 볼모로 잡힌 태후와 왕후는 13년만인 355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국내성을 나온 고구려의 군대 행렬은 압록강 줄기를 따라 태백산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오후도 늦은 시각, 해가 서편으로 한참 기울 무렵 대왕 사유는 강물에 두었던 시선을 들어 하늘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를 안개가 휘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말짱했던 하늘로 먹장구름이 몰려들었다.      

암회색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왕은 어가의 흔들림에 그저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는 한 해 전(370년) 고구려로 망명한 연나라 태부 모용평(慕容評)을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에게 보낸 것에 대해 심히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풀이 방법치고는 너무 치졸하다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왕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하들의 주장이 너무도 한결같아 이를 물리칠 수가 없었다. 당시의 국내외 상황은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고구려가 연나라의 강세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서 남쪽의 백제가 발해만까지 세력을 뻗쳐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근공원교(近功遠交) 전략으로 나가야 하옵니다. 지금 진진은 멀리 있으면서 매우 강성한 대국이옵니다. 그리고 백제는 바로 코앞에 둔 적국이옵니다. 백제를 견제하려면 모용평을 전진으로 보내야 합니다. 모용평이 스스로 망명을 요청해왔지만, 전진의 부견은 모용평이 다시 선비족을 끌어 모아 연나라를 재건할까 두려워하고 있사옵니다. 이때 모용평을 전진으로 보내 부견의 근심을 덜어주고, 그로 하여금 백제를 견제토록 하는 것이 바로 근공원교의 전략이옵니다.”

신하들의 이 같은 간청을 대왕 사유는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연나라가 망하기 1년 전, 그러니까 369년 9월에 그는 고구려 군사 2만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했다가 치양(雉壤) 전투에서 크게 패한 바 있었다. 치양 전투의 패배로 고구려는 부소갑(扶蘇岬: 개성)까지도 어이없게 내주어 인삼 교역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어찌 되었건 백제를 견제하려면 전진의 부견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숙적 연나라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적으로 백제가 떠오른 것이었다. 대왕 사유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가볍게 보았던 백제에게 그렇게 어이없는 패배를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쿠르릉, 콰쾅 쿠르르릉!

갑자기 동쪽 하늘로부터 천둥이 울었다. 높은 산에서 밀어닥친 바람이 들판을 가로질러 휘몰아쳐왔다.

“이 봄에 큰 비가 내릴 모양이군!”

대왕은 근심어린 얼굴로 먹구름이 낮게 깔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가의 차양 위로 휙휙 지나쳐가는 먹장구름으로 인해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때 선두에서 군사 행렬을 이끌던 기마대장이 급히 말을 달려 대왕의 어가 앞으로 다가왔다.

“폐하! 곧 소나기가 쏟아질 듯하옵니다. 일기가 매우 사나우니 행군을 멈추고 숙영할 방도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예기치 못한 일이로다. 이 대군이 어디서 비를 피한단 말이더냐?”

대왕이 근심어린 소리로 물었다.

“이 근처에 종마장이 있사옵니다. 대단위의 말 사육장입니다. 소장이 종마장을 운영하는 대인을 아는데, 동부욕살 하대곤(河大坤)의 종제 되는 하대용(河大容)이라는 인물입니다. 한때 범선을 수십 척씩 갖고 바다를 통해 무역을 하여 거부가 된 자인데, 백제가 해상권을 장악하게 되자 지금은 초원로를 통해 서역과 거래를 하면서 말 기르는 일에 더 열성을 갖고 있다 하옵니다.”

“하대곤의 종제라? 말을 대체 몇 마리나 기르는데 그러는가?”

“잘은 모르오나 1천여 두는 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렇게나 많이?”

대왕은 눈을 크게 뜨고 기마대장을 바라보았다.

“네, 그러하옵니다. 재작년 백제 출정 때도 하대곤 장군의 기마대에게 말 1백 두를 내주었다고 하옵니다.”

기마대장의 말에 대왕은 문득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번 전렵 행사의 표면적인 목적은 태백산 천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동부욕살 하대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대왕 자신만의 은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국내성에서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간다면 가까이 있는 동부에 미리 연락을 취해야 마땅한 일이나, 대왕은 파발 띄우는 것을 애써 막았다. 전부터 동부의 수상한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작년 백제와의 치양 전투 때 고구려 변방을 지키는 동·서·남·북 각 부의 욕살들에게 지원군을 요청했었다. 그때 동부에선 기병도 없이 말 1백 두만 보내주었다. 다른 변방 욕살들은 기마대와 보병을 합쳐 1천여 병력을 보낸 것에 비하면 크게 성에 차지 않는 지원이었다. 명색이 고구려 동북방의 숙신(肅愼)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군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었지만, 대왕은 그것을 매우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마대장의 말에 의하면 동부욕살 하대곤이 보낸 말 1백 두도 사실은 그의 종제가 지원한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종제 하대용이 종마장에서 1천여 두의 말을 기르고 있다는 것이 부쩍 대왕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렇게 많은 말을 길러 종국에는 동부의 기마대를 강화하자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에 이르자, 대왕은 마침내 종마장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그 진의를 파악해보기로 결심했다.      

“삼월 삼짇날까지는 아직 날짜가 남았으니, 그럼 일단 그 종마장에 가서 유숙토록 하자.”

대왕의 명령을 받은 기마대장은 다시 말을 타고 군대 행렬의 선두로 달려갔다.

기마대장의 말발굽에서 피어오르던 먼지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우둑우둑 하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포장을 친 듯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곧 찬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휘몰아치며 쏟아졌다. 천둥소리가 점점 요란해지고 번개가 번쩍번쩍 검은 하늘을 갈라놓았다. 번갯불이 갈 지(之) 자로 갈라지며 구름층 사이를 뚫고 나와 지상에 붉고 푸른빛을 내뿜자, 비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먹장구름을 뚫고 빗물이 동이로 물을 퍼붓듯 내렸고, 땅은 주체를 못해 기우뚱거렸다. 실상 기우뚱거리는 것은 대왕의 어가였다. 질퍽대는 땅에서 교군꾼들의 발놀림이 엇박자를 놓고 있었던 것이다. 좌우상하로 흔들리는 어가 위에서 대왕 사유는 두 손으로 난간을 붙들고 안간힘을 써댔다. 차라리 비를 맞으며 걷는 것만 못한 노릇이었으나, 체면 때문에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

소나기를 맞으면서 군대 행렬은 더욱 서둘렀지만, 비바람이 눈앞을 가로막아 전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어가 안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나인들이 급히 장막을 쳤으나, 그것으로 거센 빗줄기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폭우가 쏟아진 지 한식경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흙탕물로 변한 강물은 어느 사이 거칠게 요동치며 굽이쳐 흘러갔다. 잔잔하던 물결이 갑자기 일어서며 분노의 강물로 뒤바뀌고 있었다.

어가의 장막 사이로 들이치는 빗줄기를 맞으며 대왕 사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 그의 내부에서도 응어리진 분노가 강물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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