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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96] 리뷰: Piano ON의 한국창작곡 실내악 연주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0.2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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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피아노 전공의 이혜경 교수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전문 연주 단체인 피아노온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회에 걸쳐 자세한 소개와 그들의 활동을 전했으니 각설하고, 10월 23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한국창작곡 실내악 연주회>의 작품들 위주로 리뷰를 남기겠다.

피아노 온을 지탱하는 든든한 두 기둥

① 오세린: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노래', 피아노 이혜경 & 양수아

이해인, 강은교, 김현승, 이렇게 3명의 시인의 시를 읽고 영감을 받아 악장별로 작곡한 일종의 발라드다. 전체적인 작곡가의 심성을 알 수 있는 진솔한 악풍이다. 현학적으로 과장되고 포장돼서 자신을 억지로 드러내고 다른 사람을 속이려 들지 않고 순수하다. 라벨 그리고 히사이시 조의 영상음악과도 같은 분위기도 흐른다. 작곡가에 대해선 일면식도 없고 그의 작품도 처음 접하지만 듣고만 있어도 한 여자로서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를 안고 이 세상을 함께 걸어가는 엄마의 따스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곡가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실례라 할 수 있지만 그 또한 어떠하리.... 세상의 수녀들과 신부님 같이 그리고 생물학적인 엄마가 아니더라도 친모보다 더한 사랑과 베풂을 세상에 뿌리는 사람이 진정한 엄마라 할 수 있으니....

② 김주혜: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반딧불' : 피아노 이혜경 & 양수아

윤동주의 시 '반딧불'이 바탕이라고 한다. 시의 읽고 느낀 바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건 독자마다 다 다르고 감상이 같을 순 없겠지만 시의 메시지보단 분위기 묘사에 비중을 두어 처음부터 '랩소디 인 블루'의 전주와 같은 상향 스케일이 나오고 계속해서 트레몰로, 아르페지오, 톤클러스터 등의 연주 기법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③ 김성기: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다듬이', 피아노 이혜경 & 양수아

두 여인의 다듬질하는 서정적(???)인 모습을 표현하였다고 하는데 단어가 내포한 서정적의 의미 역시 천차만별일테다. 일단 필자 입장에선 서정적이라는 부사를 빼고 그냥 "다듬질하는 모습"이라고 적고 싶다. 국악 장단의 다양한 패턴화와 변용이 철저히 계산돼 산술로 스트라빈스키, 버르토크 식의 분절과 악센트로 중간의 빠른 발전부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칭과 대비 속에 감춰진 한국적 미와 색채가 가끔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긴 하지만 그것뿐이다.

④ 박지영: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숲의 속삭임', 피아노 이혜경 & 유지현

음렬 기법과 같은 도입부와 20세기 초반 독일의 무조음악 같다.

⑤ 황호준: 해금과 피아노를 위한 '춤추는 고양이', 해금 정겨운 & 피아노 이혜경

한국음악학과 출신 작곡가 작품의 소재가 영국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고양이 '체셔 캣'이라는 게 왠지 언밸런스해 기이하다. 해학과 풍자를 담아 전달하려는 경우가 황호준의 음악의 특징 중 하나인데 해금이 고양이 채셔 캣이 되어 야유와 조롱을 보낸다고 하지만 그런 사회 현상에 대한 메시지보단 음악을 음악으로 분리해서 취급하는 황호준의 음악도 한 번은 듣고 싶다.

해금의 정겨운

⑥ 강준일(1944-2015)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곡': 바이올린 심정은 & 피아노 이혜경

생기가 돈다. 에너지가 솟구친다. 음악적 문맥이 뚜렷하고 강한 이 땅의 생명력이 꿈틀댄다.

⑦ 김성태(1910-2012)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플루트 배종선 & 피아노 이혜경

김성태의 1969년작(당시 작곡가의 나이 59세) 작인 소나티네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당시 음악풍과 세태가 그랬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지금이야 손가락 클릭 한 번으로 세상의 모든 첨단 음악을 내 손안의 작은 기계로 듣고 배울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을 때 김성태 같은 한국 클래식 창작음악 1세대 들에게는 그들이 몸소 배우고 익힌 서양음악의 일부가 전부였을테다. 그들의 제자들인 2세대 작곡가들이 일본이 아닌 독일로 건너가 그 당시 첨단을 걷고 유행했던 아카데미 유럽현대음악을 접하고 학술차원에서 교류하면서 그걸 수입해 와 이식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조와 악풍으로 변모했고 이들의 음악이 구식으로 밀려났다.. 김성태의 작품은 다분히 20세기 초반의 미요, 뿔랑의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으나 클래식이라는 자체가 우리 문화와 문물이 아니고 서양의 것을 답습하고 받아들이는데서부터 시작한 걸 감안하며 패스트 팔로워로서 발 빠르게 대응하고 부단하게 질주한 시간들이 우리 창작음악의 역사이며 100년의 짧은 서양음악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의 한국창작현대음악의 방향을 바꿀 절대적인 게임 체인저는 이제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사조의 변화와 계승이 아닌 플랫폼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피아노 온은 일정 단체의 위촉을 받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했다면 이번에는 다년간의 노하우와 축적된 데이터 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250여 곡에 달하는 방대한 레퍼토리 중 피아노 온이 스스로 선곡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음반 출시와 그에 따른 음반 수록곡을 위주로 한 발표회를 개최하였으니 피아노 온의 선곡 기준과 취향이 절대적이었다. 초연이 아니기 때문에 연주력 역시 훌륭했다.

좌로부터 작곡가 박지영, 피아노 온의 멤버인 피아니스트 문보미,양수아,이혜경,유지현, 작곡가 박정민

오늘 음악회에서 일곱 곡 전체를 완주한 피아니스트가 있다. 박수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그녀 다음으로 일곱 곡 중 3개, 즉 거의 반을 분담한 또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있다. 둘 다 피아노 온에서 최고 연장자 그룹에 속한다. 게임 체인저가 아닌 멤버 체인저와 보강이 절실해 보인다. 그래야지 이제 외롭게 천고의 길을 걷다 근 20년 만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의 후원으로 처음으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깃발을 꽂은 피아노 온의 본격적인 행보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상술했다시피 보유한 창작곡 레퍼토리만 250여 곡이고 며칠 후 삼모아트센터에서 6곡의 신곡을 그리고 11월에 베리타스 뮤지케와 또 한 번의 창작 피아노 모음곡 발표회라는 큰 산을 잘 넘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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