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영세
언제 적 제자였나
온순하고
보일 듯 말 듯 다리를 조금 절었지
지금은 한쪽에서
늘 그릇 닦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시 쓰는 마음으로
그릇을 닦는다니
그러나 시는 썩 좋질 않기, 오히려
그 마음 얼마나 아름다운가
끌리는가 떵떵거리는
잘난 이들 잘 쓴 글보다도
―웃기는 짜장면들,
영세가 빨리 좋은 여자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면
아들 하나 낳아
꿈에도 그린다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이따금 영세를 통해
시를 다시 보고
곰곰 내 인생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어
참 좋다
―영세는 세 살 때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아 장애를 안고 살고 있다 그런데 잘 쓰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시를 쓴다 자신한텐 시가 마치 신체의 일부 같댄다 졸업하고 뾰족한 직업도 구할 수 없고 식당에서 그릇 닦는 일을 한댄다 가끔씩 관악백일장 같은 데 나가 장려상을 받고 한 시를 보내오곤 하는데 얼마 전 아주 작은 문예지로 등단했다 소감문에 결혼도 하고 싶고 한 아이의 아빠도 되고 싶고 시인으로 살아가고도 싶고 그러려면 생업인 그릇 닦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릇 닦는 일이
시보다 빛나는 순간이다
시작 메모
아, 그땐 가난한 제자들도 아픈 제자들도 많았다. 그 많은 제자 중 공부 못하는 제자들을 가장 좋아했다. 시 못 쓰는 제자들을 가장 사랑했다. 영세, 정구, 경석이, 이슬이, 이하나, 배하나___ 해도 해도 써도 써도 꼴찌에서 둘째, 꼴찌에서 셋째, 꼴찌에서 넷째. 그런데 신기한 게 꼴찌는 언제나 걔네들이 아니라 다른 애들 좀 똑똑한 애들이 맡아 놓고 했구나. 일이등이 아니고 평생 꼴찌도 해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제자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고 옆으로만 가야 하는 저 꽃게 같은 애들이 생각난다. 그래, 이제 나도 가 본다. 옆으로 옆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