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27
  • 후원하기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27
  • 윤한로 시인
    윤한로 시인 jintar@hanmail.net
  • 승인 2021.10.22 08: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영세

 

 

언제 적 제자였나

온순하고

보일 듯 말 듯 다리를 조금 절었지

지금은 한쪽에서

늘 그릇 닦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시 쓰는 마음으로

그릇을 닦는다니

그러나 시는 썩 좋질 않기, 오히려

그 마음 얼마나 아름다운가

끌리는가 떵떵거리는

잘난 이들 잘 쓴 글보다도

웃기는 짜장면들,

영세가 빨리 좋은 여자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면

아들 하나 낳아

꿈에도 그린다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이따금 영세를 통해

 

시를 다시 보고

곰곰 내 인생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어

참 좋다

영세는 세 살 때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아 장애를 안고 살고 있다 그런데 잘 쓰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시를 쓴다 자신한텐 시가 마치 신체의 일부 같댄다 졸업하고 뾰족한 직업도 구할 수 없고 식당에서 그릇 닦는 일을 한댄다 가끔씩 관악백일장 같은 데 나가 장려상을 받고 한 시를 보내오곤 하는데 얼마 전 아주 작은 문예지로 등단했다 소감문에 결혼도 하고 싶고 한 아이의 아빠도 되고 싶고 시인으로 살아가고도 싶고 그러려면 생업인 그릇 닦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릇 닦는 일이

시보다 빛나는 순간이다

 

 


시작 메모
, 그땐 가난한 제자들도 아픈 제자들도 많았다. 그 많은 제자 중 공부 못하는 제자들을 가장 좋아했다. 시 못 쓰는 제자들을 가장 사랑했다. 영세, 정구, 경석이, 이슬이, 이하나, 배하나___ 해도 해도 써도 써도 꼴찌에서 둘째, 꼴찌에서 셋째, 꼴찌에서 넷째. 그런데 신기한 게 꼴찌는 언제나 걔네들이 아니라 다른 애들 좀 똑똑한 애들이 맡아 놓고 했구나. 일이등이 아니고 평생 꼴찌도 해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제자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고 옆으로만 가야 하는 저 꽃게 같은 애들이 생각난다. 그래, 이제 나도 가 본다. 옆으로 옆으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