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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94] 리뷰: 황수연 피아노 독주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0.20 09:29
  • 수정 2021.10.2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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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화요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

아투즈컴퍼니에서 주최로 10월 19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황수연 피아노 독주회의 1부는 브람스의 <발라드>와 <파가니니 변주곡>, 2부는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0월과 11일 그리고 플레트네프가 편곡한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피아니스트 황수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손이 얼고 컨디션 조절을 하기 힘들었을 테다. 황수연은 첫 곡인 <발라드>를 마치고서야 얼굴에 혈색이 돌고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브람스에서 피아노 건반은 묵직했다.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해머와 피아노가 안 그래도 가냘퍼 보이는 체구의 황수연과 피아노와의 씨름을 더욱 버겁게 만들었다. 하필이면 같은 시각, 지상의 콘서트홀에선 2년 만에 내한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의 베토벤 연주회가 있었는데 혈통상 독일계 남성 피아니스트의 자국 음악 연주회와 동양 여성의 남성적 구역의 전형인 브람스가 동시에 울렸다.

권투나 유도 등의 대결에서 체급을 나누는 이유가 있다. 체형, 몸무게 등에 따라 스피드와 근력의 차이가 명확하고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인데 작곡가의 체형과 신체조건 그리고 악기의 메커니즘과 제조된 악기를 다루는 사람과의 적합성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파키아오같이 그런 걸 싹 무시하고 어마어마한 운동량으로 8계급을 석권한 경우도 있지만 마이크 타이슨과 50Kg 대의 호리호리한 동양인 선수가 같은 링에서 뛸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비록 '정교한 손가락을 위한 연습곡'인 <파가니니 변주곡>에서 정교하진 못했지만 총 28개의 변주곡 조각들을 자신의 체형과 조건에 맞게 조율하고 조절하고 변화시키면서 마지막 음의 마침표를 찍었다. 1권이 끝나면 객석에서 곡이 끝난지 알고 분명 박수가 터져 나올 테고 그 사이에 짧게 숨을 돌리면서 조그마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깨지면서 황수연은 저돌적으로 2권으로 곧바로 들어갔다. 보통 피아니스트들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1&2권을 완파한 황수연의 도전이자 완주였다.

2부의 차이콥스키에서는 1부에서와 똑같은 피아노지만 전혀 다른 음색과 훨씬 유연한 분위기를 이끌어내었다. 건반의 육중함 자체가 달랐다. <사계>의 10월에서는 여리고 감성적이고 애수 있는 정취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였는데 이게 바로 슈퍼 헤비급 선수들은 하기 힘든 재간 아니겠는가! '11월'은 이번 음악회의 백미로 정확한 리듬감과 발랄함으로 유미적인 세계를 연출하였다.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중 4번 '인터메조'에서 황수연은 리스트의 '위안'(Consolation)이나 '탄식'(Un Sospiro)과 같은 스타일로 장대하면서도 부드럽게 흰 눈이 펼쳐진 러시아의 겨울 평야를 그려내고 5번 '트레파크'에서는 브람스에서와는 다른 맛의 저음 강타를, 6번 '중국춤'에서는 오른손의 프레이징이 가볍고 명랑하며 도약도 지속적으로 맞아떨어지는 합을 보였다.

응원과 격려의 박수!

거구의 장타자들이 넘쳐나는 메이저리그에 휴스턴의 알투베가, 장신에 체격적인 면에서 월등한 분데스리가의 게르만계 선수들 사이에서 독일 사람치고 170도 안된 작은 키로 필드를 누빈 토마스 해슬러의 경우처럼 자신의 조건에 가장 맞는 전략과 특성으로 불세출의 케이스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 165의 작은 키로 김지찬이 나오기 전까지 최단신 선수였던 기아 타이거즈의 김선빈은 홈런타자가 아니다. 대신 타격왕을 등극했다. 그리고 점점 노하우가 쌓이더니 지금은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끔 홈런도 친다. 올 시즌 5개의 홈런으로 팀 내 홈런수 3위다! 과감히 부흐빈더의 베토벤을 포기하고 들으러 간 황수연 독주회답게, 브람스를 완파한 황수연답게 다음은 또 어떤 (슈만의 카니발? 또는 라흐마니노프의 2번 소나타?)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만날지 그녀의 다음 목적지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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