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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90] 리뷰: 트리오 MEG 제3회 정기연주회 'Re:Imagine'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0.10 18:40
  • 수정 2021.10.1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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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일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Music Makes Everything Grow라는 슬로건으로 결성된 피아노 트리오 MEG의 제3회 정기연주회가 'Re:Imagine, 고전을 재해석하다'라는 부제로 10월 10일 일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렸다. 인기 오페라 아리아를 4명의 작곡가에게 트리오 편성으로 편곡을 의뢰한 1부와 브람스 트리오 1번 나장조의 2부로 구성되었다.

좌로부터 바이올린 김광훈, 피아노 김용진 그리고 첼로의 윤여훈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편곡 장대훈, 조안나)는 원곡의 나란한조인 F#-minor로 첼로의 깊숙한 저음으로 시작하여 베이스 사운드가 강화된 한스 젠더(Hans Zender)류의 영화음악 같았다. 가사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목만 읽고 선율만 피상적으로 인지하고 멋대로 제목처럼 아버지를 위한 애가(愛歌)로 착각하기 쉽지만 장대훈과 조한나는 곡의 스토리에 주목하여 곡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어두운 비장미와 비극성을 강조한다. 선율은 원곡 그대로 거의 나가고 중간에 플랫 계통의 장조로 전환되기도 하지만 오페라 아리아의 내용을 가장 충실히 따른 편곡이었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편곡 강종희)에서 무대 위의 바이올린 주자가 자꾸 제목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고 발언하였는데 정작 흐르는 건 강종희의 '눈물이 흘렀다'(Tears Flowed)였다. 주인공이 흘리는 거와 흘린 눈물이 흘러내리는 건 주체의 대상이 다른 것처럼 강종희는 편곡의 여러 종류 중 원곡의 선율을 다른 악기에 배당하거나 베껴쓰기(그녀의 발언이다)하지 않고 음악회 제목처럼 '재-상상화'(Re:imagine)하여 자신만의 감성으로 재탄생시켰다. 중간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과 비슷하다가 원곡처럼 따뜻하게 장조로 끝났다.

다시 푸치니다. 이번엔 '토스카'중 별을 빛나건만(편곡 최영민)인데 중간 부분은 선율의 확장과 이끎으로 반전을 꾀한다. 아리아의 선율에서 모티브를 따와 최영민의 색채와 개성으로 탈바꿈되면서 아리아가 피아노 3중주 기악 음악으로 변모했다. 감정의 증폭과 과잉은 응집되고 응결되면서 커져만 가더니 '토스카'가 아니라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이 폭발하여 손에 땀이 저절로 흥건할 정도였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다음 곡이었던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물박사에서는 최영민은 현대판 리메이크를 선보였다. 세빌리아가 무대니 전주는 스페인 풍이 물씬 난다. 18세기의 로시니가 아닌 21세기 스페인 세빌리아의 거리가 펼쳐지고 반음계 화성이 흐르면서 편곡자의 풍부한 상상력이 농후하다. 전개는 원곡 그대로 따르지만 코 끝을 간지럽히는 바이올린의 익살과 레너드 번스타인 '맘보'의 흥겨움이 가득 차있다. 다만 이 곡을 소개하면서 피아니스트 김용진은 007 제임스 본드와 비슷하다고 했지만 현재 영국 007팬클럽의 27년째 정회원이자 이번 최신작 '노 타임 투 다이'도 벌써 2번이나 본 필자는 강하게 아니다라고 부정한다. 차라리 '라라랜드'와 비슷하다고 하면 모를까.....

Music makes everything grow! everything 이전에 음악인들부터 자립하게 해주었으면.....

성차별적인 발언이라 딴지 걸지 마시라! 아무리 넘치는 프로불편러들이 본질 말고 곁가지에 주목하는 세상이라지만 브람스는 역시 3명의 남자가 하니 제격이었다. 중후하고 묵직하면서 비 오는 날씨에 남자의 계절 가을, 브람스만의 무뚝뚝하지만 고독함이 진하기만 하다. 1악장에서 피아노 김용진은 지극히 안정적으로 옛 추억을 반추하는 듯한 첼로의 선율을 이끌어내었으며 첼로 역시 굵으면서 선명한 윤곽으로 거기에 화답했다. 신비로우면서도 싱커페이션의 적절한 가미로 애절한 2주제와 그에 상반되는 발전부에서의 피아노의 강렬한 타건에 안 그래도 비가 와서 떨어지는 현악기의 피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롱하면서 빛나는 음색으로 두 현악기가 조화를 이루었다. 날카로운 고음과 브람스의 스케르초에서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심장 박동과 같은 셋잇단음표의 조화, 그리고 천상의 화음으로 섬세하고 부드럽게(zart) 영혼을 달래주고 어루만져 주었던 3악장까지 피아노의 김용진, 바이올린의 김광훈, 첼로의 윤여훈의 호흡과 앙상블 그리고 힘의 안배와 밸런스는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이어지는 4악장 아르페지오의 물결과 대위법적으로 촘촘하게 만나는 수직과 수평의 결합을 넘어 스태미나 떨어지지 않고 집중력 있게 도달한 4악장의 피날레로 대단원의 브람스 트리오가 막을 내린 호연이었다.

트리오 MEG 멤버들의 프로필과 공연 프로그램

IBK홀 입구에서부터 젊은 남녀 커플이 당황해하며 여자가 남자에게 종이, 안내장을 가지고 오라고 독촉했다. 언어에 의해 표시되는 시니피에(Signifie)는 개념의 표출이다. 기독교인이 염불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불교인에게 성경 속 가나안인들의 이름이 생소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우리는 팬데믹, 부스터 샷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고 살았다. 즉 프로그램을 종이, 안내장이라고 지칭하는 자체가 시니피앙(Signifiant)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닳고 닳은 유명 오페라 아리아들과 지겹기 그지없는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와의 삼각관계에 대해 연주자들이 개그와 연기까지 덧붙여 설명하는 걸 객석에서 듣고 있는 거 자체가 곤욕이다. 그래봤자 지나면 잊고 또 설명해 줘야 하는데 이런다고 클래식 대중화라는 명제를 이루지 못한다. 그저 1만 2천원에, 8명의 자식에 와~하고 반응하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왔으니 웃고 간다. 이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대놓고 눈물을 흘리고 싶다. 그런 부연 설명 넘어가고 빨리 그들의 연주를 듣고 싶다. 트리오 MEG의 멤버들 세 명은 무대에서 아무 말 없이 연주로, 음악으로도 충분히 자신들의 진가를 발휘하고 음악 자체만으로 자신들의 클래스를 입증할 수 있는 우수한 비르투오소로 인정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이들이 음악에만 온전히 몰입하여 마음껏 활개를 치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여건과 시장이 마련되는 게 급선무다. 한국 수준에 비해 너무나 일방적인 월드 클래스 연주자들의 공급과잉이 이루어져 불균형이 생태계를 파괴시킨다. 그렇게 손뼉 치고 열심히 호응해 주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집에 가서 고작 1만2천원 음원 1년 수입을 거둔 디지털 음원부터 다운로드해 구입해 주고 그들이 연주한 브람스 트리오를 다른 연주 단체 버전이라도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보고 음악이 주는 감동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올 연말에 발매될 오늘 발표된 곡들이 포함된 총 12곡의 유명 아리아 편곡 음원 잊지 말고 구매하라! 그게 바로 예술가들을 진정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응원하는 자세이고 그들의 연주에 고마움을 표하며 다음 연주를 위한 격려이자 오늘과 같이 수준 높은 연주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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