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489] 리뷰: 김진선 X 이재구 협업 프로젝트: 나를 멈춰서게 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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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89] 리뷰: 김진선 X 이재구 협업 프로젝트: 나를 멈춰서게 한 것들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21.10.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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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개발로 바뀌고 있는 서대문구 북아현동과 마포구 염리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찍은 김진선의 사진전이 이화여자대학교 '이화 아트파빌리온'에서 10월 15일 금요일까지 개최 중인 와중에 그 사진들을 보고 작곡가 이재구가 음악을 붙이며 직접 기타를 치면서 바이올리니스트 이해인과 같이 연주한 사진과 음악 협업 <나를 멈춰서게한 것들> 콘서트가 10월 9일 토요일 오후 4시 30분에 열렸다.

김진선 X 이재구 협업 프로젝트 '나를 멈춰서게 한 것들' 포스터

대상을 포착하고 분석하는 게 아닌 대상들 자체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기존의 관성에 저항하면서 자유롭게 음악적으로 표현하였다. 3도막으로 명확한 <바가텔>이란 가장 작은 형식의 틀로 바이올린과 기타의 2중주 3개, 역시 일정하고 특별한 구조 없이 자유롭게 악상을 전개하는 '프렐류드'라는 형태를 음악화의 그릇으로 삼아 기타 독주 2개, 총 다섯 작품을 발표하였다.

바이올린 이해인과 직접 기타를 치면서 자작곡을 연주하는 작곡가 이재구

①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바가텔 1번 '수고' 1번 밤 & 2번 낮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같은 오픈월드 게임에서 같은 도시의 낮과 밤을 다른 BGM으로 설정하고 RPG의 명작 '울티마 9'에서도 타락한 도시의 정화 전과 후에서의 음악이 달라진다. 이재구의 '수고' 역시 밤과 낮이 다르다. 밤은 단조다. 뉴욕, 서울, 런던 같은 대도시의 무겁고 짐 진 자들의 끊임없는 윤회다. 중간의 헤미올라가 특히나 인상적으로 기타와 바이올린이 다른 리듬으로 나간다. 바이올린의 G#음을 기점으로 다시 A'부분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엔 앞부분보다 커졌으며 코다가 붙어 확장되었다. 낮은 장조의 우아한 악풍인데 1마디 안의 마지막 4박에서 꼭 3음이 반음 떨어지면서 G#음이 아닌 G음을 낸다. 짐 지고 수고로운 자들이 쉴 곳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한 수고를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안식이 없이 달리고 달려야만 한다. 마치 로드무비의 Runner 같이......

②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바가텔 2번 '누구시죠?

좁은 골목의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느닷없이 마주친 고양이와 강아지가 주인공이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대번에 오후의 망중한 같은 여유 있고 재즈풍의 블루스가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여지없이 맞아떨어졌다. 스윙의 리듬과 반음이 부딪히는 화음도 모티브로 깔리더니 최후에는 화음이 더 깨진다.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이 도시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랴는 질문과 같이.....

③ 기타 독주를 위한 프렐류드 1번 '남겨진 이유'

재개발을 위해 원래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황폐화된 삶의 터전에 남겨진 존재들이 우울하고 애수에 젖을 필요가 있을까? 개발과 보전, 도시재생이냐 재건축이랴는 선택은 관점의 차이다. 개발의 주목적은 삶의 질 향상이며 무엇보다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터이지만 토건 마피아를 통한 마구잡이 이윤추구는 인간성의 상실과 오직 돈만 추구하는 세력들의 야합으로 이어진다. 외부인(필자)의 눈에 비친 염리동과 북아현동은 상전벽해다. 25여 년 전 추계예대를 방문하기 위해 왔던 어두침침했던 뒷골목과 길을 잃을 정도의 가파르고 꼬불꼬불했던 산비탈의 염리동 고개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지금의 아현역 인근은 언제 그랬냐느듯 이 깔끔하게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실거주자의 사정과 사연은 당연히 고려와 존중이 될 터였지만 욕심이 눈을 가리고 탐욕에 문들어 뉴타운에 몰표를 던지는 것도 대중의 속성이요 폭발 같은 인구의 마구잡이 유입으로 서울의 외곽지역이 난개발 달동네가 형성되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와 선악의 구분의 모호함....

김진선 작 '우리만의 시간'

④ 기타 독주를 위한 프렐류드 2번 '우리만의 시간'

사진의 주인공은 자전거와 의자다. 그들이 추는 왈츠다. 이 작품을 포함 전체적으로 기타는 미니멀적인 요소가 강하고 음형들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가운데 다분히 선율적이다. 기타가 아니라 피아노로 연주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게 만드는 유혹이다.

⑤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바가텔 3번 '너에 다다르다'

4번에 대한 부연 설명이 이어진다. 독주가 아닌 2중주에서 바이올린은 주로 긴 음과 넓은 보잉과 프레이즈를 담당한다. 거기에 기타는 음형과 리듬으로 나눠진다. 역할 분담이 뚜렷하다. 가천대학교 음악대학 4학년의 바이올린 이해인은 음악 분석에 명석하면서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더니 역시나 연주도 잘 한다. 곡의 구조를 분석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사람치고 연주력이 딸리는 사람 못 보았다. '너에 다다르다'에서는 부점의 리듬(뒤의 음가가 훨씬 긴)과 온음으로 이어지는 이분법적 모티브가 발전과 확대하며 곡 전체의 기저를 이룬다. 바가텔이니 가운데 부분이 달라진다. 여기선 마치 사라지는 대상이 소멸하기 전에 눈에 담고 손에 닿기 위해 추진력을 얻어 가속한다. 결국 대상을 처음 접하면 순간 멈춰 서서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들더니 그 대상의 이면은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출연자 프로필과 콘서트 프로그램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지금의 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10월도 곧 사라지고 말 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찬바람이 불 테다. 우리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누리고 보존하기 위해 더 많이 걷고 돌아다니고 접해야겠다. 예나 지금이나 ECC가 있던 시절이나 없던 시절이나 변치 않고 한결같았던 게 있긴 있다. 바로 이대 정문 옆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럭키아파트 단지다. 대상을 처음 보고 왜 아파트가 대학의 정문 앞에 조성되어 있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그 아파트...럭키 아파트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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