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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88] 리뷰: 수리산의 4경,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0.07 08:46
  • 수정 2021.10.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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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콘서트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만 관현악 연주를 듣다가 오래간만에 들른 중소도시 시민회관(문화예술회관)에서의 2관 편성 오케스트라 음악회였다. 아무 보호막도 없이 하나라도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 거 그대로의 생생한 홀 사운드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와 <전원교향곡>은 연주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스코어를 분해해서 해부학 공부를 하기에 최적격인 공간이었다. 하나로 합쳐진 완전체 조화가 아닌 호른은 호른대로, 트럼펫은 트럼펫대로, 오보에는 오보에대로 따로 국밥이 따로 없다.

무대인사하는 작곡가 박정양

10월 6일 수요일 군포문화회관에서 열린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정병휘)의 연주회 2번째 레퍼토리로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에 서곡 <에그몬트 서곡>에서의 악장이 솔리스트로 성큼 무대로 걸어 나와 깜짝 놀라 다시 프로그램 북을 뒤적였다. 동일 인물이었다. 강원대학교 부교수(정년교수라고 가로 열고 명확히 명시된)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주가 오케스트라의 악장과 함께 솔리스트 역할까지 한 거였다. 섬세함과 정교함으로 솔리스트와 현악 주자들이 일심동체 된 반면 3악장은 조금 이질적이었다.

음악회 와중에 갑자기 왠 시 낭송인가 싶었는데 음악회의 주제이기도 했던 <수리산>을 주제로 30여 년째 군포에서 거주하는 뼛속까지 군포인인 지역 시인이 수리산 찬가를 읊으며 BGM으로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중 <첼로>가 깔렸다. 생상의 백조가 이렇게 시 낭송의 BGM으로 운치를 더했나 싶을 정도로 지역 예술가 다섯 명이 찍고 그린 군포와 수리산의 사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동영상과 잘 어울렸다. 이 작은 스테이지 덕에 수리산 하면 7년이 넘게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강제로 이끌려온 박달 교장의 악몽에서 벗어나며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같은 곳, 같은 장소가 어떤 사정과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천지가 바뀌는데 문화예술이야말로 진정한 게임 체인저라는 걸 확인한 체험이었다.

10월 6일 수요일 수리산의 사경 포스터

오늘 음악회의 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곡가 박정양의 Symphonic Painting <수리산의 4경>은 전통적인 범주의 교향곡의 얼개에 작곡가 개인이 받은 수리산의 랜드마크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작곡가 개인이 교향화라고 지칭한 이 곡은 작곡가 개인의 인상을 음악으로 묘사한 인상파적인 작법이 아닌 수리산에 얽힌 4개의 절경을 보편적인 접근으로 듣는 이와 함께 공감을 꾀한 작품이다. 느린 전주에 빠름 - 느림 - 3/4박자의 춤곡 - 느린 서주에 빠름이라는 총 4악장의 교향곡 형식을 취하면서 레스피기의 <로마> 시리즈에서처럼 각 악장은 제목의 대상을 라이트 모티브를 활용, 전 악장을 관통해 나가며 음악으로 그려나갔다. 1악장 태을봉에서 보는 일출은 행진곡 풍의 씩씩한 기상곡이다. 가슴속에 뭔가 뜨거운 게 용솟음치는 일출의 비장함과 감격이 흐른다. 3악장은 마을 수호신 덕고개의 축제를 춤곡으로 전환한 차이콥스키 풍의 센티멘털한 왈츠다. 4악장은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과 같은 '어둠에서 광명'으로의 승리의 찬가다. 듣고만 있어도 눈앞에 반월호가 펼쳐진다. 4악장을 관통하는 주제가 코다에서 힘 있고 위엄있게 현의 튜티로 흐르다가 갑자기 같은으뜸음조인 다단조로 바뀐다. 총주에서 비올라 파트만 화음의 3음이 바뀌면서 피카디리로 대단원의 수리산 종주가 끝나고 플루트가 매력적으로 통통 튀면서 군포와 수리산의 밝은 여정이 계속됨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박정양의 <수리산의 4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2악장이었다. 새벽 수리사의 정취가 풍겨진다. 산사의 종소리와 목탁소리 그리고 지극히 동양화 같은 정서에 신비롭고 몽환적인 안개가 자욱한 새벽의 수리가 정경이 그려진다. 대하사극의 BGM 같으며 전체적으로 음악회의 취지와 오케스트라의 형편에 맞게 작곡된 맞춤형 창작곡임을 증명한다. 다만 이런 모든 요소들이 오랜 시간의 숙성과 다리품을 판 직접적인 방문, 장기간의 탐사와 스케치 그리고 포착으로 용화되었다기 보다 피상적이었다. 올 6월에 작곡 의뢰를 받아 3개월 만에 완성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을 테다.

지휘자 정병휘와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그래도 기쁘고 보람 있다. 신완섭의 시와 군포의 다섯 예술가들이 합작한 시각품에 박정양의 교향화를 통해 군포와 수리산을 다시 알게 되었으니. 더 늦기 전에 이들과 손잡고 점점 가을의 모습을 취하는 수리산에 오르고 싶구나. 이제 박달 예비군 훈련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산이 좋아 인자(仁者)되고 물이 좋아 지자(知者)되는 인정이 물 흐르듯 흐르는 수리산 자락의 군포, 안양, 안산 세 고장의 정기를 마시며 이곳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게 되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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