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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26

윤한로 시인
  • 입력 2021.10.0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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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생극에 가다

 

 

갑작스런 강추위에 귀싸대기가 얼얼하다

골짜기 야산 억새 더미

눈 부스러기에 뒤덮여 반짝이고

새로 생긴 생극 추모공원

저마다 숨소리 죽인 납골실

마치 대학교 도서관 같다

망자들 칸칸이 빼곡하다

꽃무더기 속에 묵주알 속에 파묻힌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이름과 그 길고 짧은 생몰 연대와

한창때 스냅사진들

읽는다, 짧을수록 천천히

(그러나 다들 책 놓은 지 오래된 우리들인데

보아하니 먼지나 털어 주는 겔 게다)

어렸을 적 늙었을 적 처녀 적 학생 적

살았을 때 가장 좋던 시절 택해

누구랄 것 없이 활짝 웃고 있으니!

오히려 가슴 애려

어정어정 걸어 나온다

코를 훌쩍거리며

우리들 참 조용하다

우리네 지금 책 읽는 사람들 아니냐

도서관에서 누가 떠드냐

그래서 그런지 별말씀들 없다

커피를 뽑아 먹으면서도

화장실 오줌을 누면서도

가무잡잡한 박시몬 씨조차 오늘따라 말이 없다

 

 


시작 메모
주검의 장소, 그곳에 가 본 사람들은 그러나 그곳을 깨달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엔 세상에서 그곳이 가장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디보다 그곳이 가장 좋습니다. 영원히 떠나기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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