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생극에 가다
갑작스런 강추위에 귀싸대기가 얼얼하다
골짜기 야산 억새 더미
눈 부스러기에 뒤덮여 반짝이고
새로 생긴 생극 추모공원
저마다 숨소리 죽인 납골실
마치 대학교 도서관 같다
망자들 칸칸이 빼곡하다
꽃무더기 속에 묵주알 속에 파묻힌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이름과 그 길고 짧은 생몰 연대와
한창때 스냅사진들
읽는다, 짧을수록 천천히
(그러나 다들 책 놓은 지 오래된 우리들인데
보아하니 먼지나 털어 주는 겔 게다)
어렸을 적 늙었을 적 처녀 적 학생 적
살았을 때 가장 좋던 시절 택해
누구랄 것 없이 활짝 웃고 있으니!
오히려 가슴 애려
어정어정 걸어 나온다
코를 훌쩍거리며
우리들 참 조용하다
우리네 지금 책 읽는 사람들 아니냐
도서관에서 누가 떠드냐
그래서 그런지 별말씀들 없다
커피를 뽑아 먹으면서도
화장실 오줌을 누면서도
가무잡잡한 박시몬 씨조차 오늘따라 말이 없다
시작 메모
주검의 장소, 그곳에 가 본 사람들은 그러나 그곳을 깨달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엔 세상에서 그곳이 가장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디보다 그곳이 가장 좋습니다. 영원히 떠나기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