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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84] 리뷰: 운지회 체임버오케스트라 시리즈 XVI, Joy on the Strings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0.01 09:16
  • 수정 2021.10.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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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품 발표와 음악의 연구 및 교육에 뜻을 두고 1992년에 창립 후 창작 관현악곡과 현악합주곡 등 대규모 편성의 작품들과 국악기로 구성된 창작현대음악 등 연주될 기회가 적은 편성의 창작 현대음악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해 온 운지회가 9월 30일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열여섯 번째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운지회의 열여섯 번째 체임버오케스트라 시리즈는 작년 코로나 여파로 인해 무관중으로 치러진 후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되는 뜻깊은 자리이다. 금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백병동을 비롯하여 박영란, 조선희, 이근형, 강훈, 전현석의 작품이 박상연의 지휘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소개되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원로 작곡가 백병동
노익장을 과시하는 원로 작곡가 백병동

단국대학교에서 백영은에게 사사하며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한 강훈의 첫 곡 현악합주를 위한 <오래된 그림자>는 고음과 하모닉스의 작렬로 시작하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비올라의 거친 파도에 2명의 바이올린 주자를 제외하고 전부 피치카토가 이어지고 피치카토를 하지 않은 그 2명도 피치카토에 합류하면서 영겁의 사슬을 계속 이어갔다. 작품의 영감이 된 동명의 시를 읽어보지 못해서 시 안에 내재된 여러 가지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듣고 한편의 그리스 비극과 같은 피카레스크 내용일 거라고 그저 유추해 볼 수밖에 없었다.

전현석의 <빛의 강>은 Michael Hieronymus의 동명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뒤의 조선희 작품도 앞의 강훈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작품을 제대로 알고 이해시키기 위해 청자의 수고를 동반해야 한다니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다. 프로그램 상의 아이디어를 얻은 시나 그림을 삽입해 주지 않아 귀가해서 구글링을 한다. 오해와 오독을 피하기 위해 작곡가보다 청자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창작음악이라면 더욱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구글링을 통해 전현석의 작품에 근원이 된 그림을 필자가 소개한다. 다음 발표회 시는 작곡가들이 직접 프로그램에 기입해 주길 바란다. 그림을 보고 들은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니 '파장'이란 단어가 금방 머리에 떠올랐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 전현석은 그렇게 많은 트레몰로를 소환해 낸 것이었구나....

전현석 작품의 근간이 된 Michael Hieronymus의 그림 'Lichtfluss' 사진출처: http://michaelhieronymus.de/alps

조선희의 <먼지 왕국>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2018년 작이다. 그렇다면 다른 다섯 작품들은 오늘 화음쳄버를 통한 초연이란 말인가? 이것도 궁금하고 어디 한군데 적혀있지 않으니 답답하다. 이서형의 동명의 그림을 소재로 작곡했다고 하는데 구글링하다가 포기했다.(이서형의 그림을 못 찾은 필자를 탓하지 마라!) 하지만 음악만 듣고는 그림이 따뜻하고 온화할 거라 예상이 되지 않는다. 아마 무채색의 무미건조한 정말 희뿌연 먼지투성이의 그림이지 않을까? 그저 궁금하다... 나만 그런가?

무대인사하는 작곡가 조선희

이근형의 <스펙트럼>은 기존에 가졌던 이근형 음악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완전히 부순 명확한 기승전결과 스토리텔링이 된 작품으로 화음챔버라는 우수한 연주 단체를 매개로 마음껏 활용하여 작곡가와 연주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린 역작이었다. 앞의 세 작품이 굳이 화음쳄버 정도의 기량을 가진 훌륭한 연주 단체가 아닌 얼마든지 오브리 식의 연주자 수급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법 위주의 작품이었다면 이근형은 화음쳄버로 우도할계(牛刀割鷄)를 범하지 않는다. 과감히 단언컨대 이 곡 다음 화음쳄버 연주회에서 언젠가 다시 들을 수 있을 테다. 한글보다 이근형이 적은 영문 제목이 이 작품 이해를 위한 열쇠다. The Spectrum where it begins(스펙트럼 어디선가 시작되는 스펙트럼) 옛 것으로부터 새로운 진동과 묘사의 장이 열린다.

박영란은 현란하고 화려하면서 정밀하다. 치밀하고 정교하다. 그래서 눈과 귀를 충족시키면서 악보를 찾아보고 싶고 모방을 하고 싶게 유혹한다. 연주자에겐 극도의 집중력과 기교를 요구한다. 이상의 시 <거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다른 이상의 시만큼 난해하지 않다. 자기분열이다. 이상이든 박영란이든 기법적으로는 최고의 경지다. 다만 그것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형상이 난해하고 오리무중이다.

마지막 곡은 백병동의 <줄 위에 머문 환상>이다. 가야금 협연자인 정효성의 위촉으로 작곡되어 초연 때의 현악4중주가 현악합주로 확대된 버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곡을 한 대의 가야금과 현악4중주가 합해진 가야금 5중주가 같은 실내악적 전달이 주가 되어 가야금이 독주가 되면서 서양 현악기가 서양 작곡 요소 안에서 정립하면서 보조를 맞춘다. 노익장이다. 음악가로서 행복한 건 정년이 없다는 거다. 꾸준히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최고의 직업이기도 하다.

화음쳄버와의 동행은 여러모로 작곡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양질의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며 창작과 연주라는 밸런스를 맞춰 보다 이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 탄생이 밑천이다. 작품은 계속 연주하고 자주 무대에 올려야지 연주력이 상승하고 곡에 대한 완성도가 무르익다는 건 가장 기본적인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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