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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82] 리뷰: 오페라 옴니버스 & 팬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9.25 08:32
  • 수정 2021.09.2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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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금요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부에서는 오페라 <카르멘>과 <라보엠>을 2부에서는 뮤지컬 레퍼토리로 구성하면서 팬텀싱어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남자 성악가들과 소프라노 김순영, 류성녀와 메조소프라노 김순희라는 개성이 뚜렷한 3명의 여가수를 엮어 오페라와 뮤지컬의 친숙한 곡들을 들려준 시간이었다. 지휘자 최영선과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는 기존에도 이런 방식의 옴니버스 공연을 많이 시도하였는바,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영화나 연극의 한 형식의 옴니버스란 단어를 차용한 이런 일련의 기획들은 탁월한 작명이자 고유 브랜드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김자경오페라단과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주최한 오페라 옴니버스 & 팬텀

서현의 책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 따르면 음악당의 좋은 자리에 앉을 권리는 음악회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는지에 따라서 결정되지 않고 자본의 여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니 음악당이야말로 자본으로 치환된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한다. 즉 음악회 개최를 위해 얼마만큼 기여를 했느냐에 따라 좌석이 결정된다. 오래간만에 2층 꼭대기 정상에 독야청정하며 아래를 관망하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고 단돈 5000원 내고 오페라 하우스에서 죽돌이처럼 굴었던 독일에서의 10대 유학시절이 회상되었다.

<카르멘>은 메조소프라노가 주인공이면서 보편적인 친숙함을 가진 선율과 색채를 가진 오페라다. 카르멘 말고 유독 프랑스 오페라에서 메조소프라노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에선 억울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단은 크고 질러대는 소리를 선호한다. 삼단 고음이네 뭐네 하면서 서커스 같은 신기 묘기에 그저 갈채를 보내고 경쟁한다. 그냥 인간의 목소리와 타고난 성대에 따라 음역을 맞춰 부르는 차이일 뿐인데 크고 화려하고 거대한 걸 추앙하는 반도 콤플렉스의 비극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바리톤이나 알토 등은 매력은 간과하고 지나간다. 그래도 이소라는 낫다. 내용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의 노래는(비록 실시간 자막으로 친절하게 프롬프트를 쏘고 있지만) 생소하기 그지없는데 소프라노와 테너는 화끈하게 대시벨을 올려주니. <투우사의 노래>나 <카르멘 서곡>이라면 관객들은 절로 회중의 교인이 되어 꿍짝꿍짝 네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면서 따라온다. 거기에 트럼펫이라면 금상첨화다. 누군가 치면 나도 모르게 군중심리로 따라 치는 촌극이 벌어지지만 갑자기 빨라지는 오케스트라의 아체르단도에는 따라가지 못한다.

김순희와 류성녀 둘 다 치명적이다. 김순희가 고혹적이고 뇌색적이라면 류성녀는 관능미를 과시한다. 그래서 라보엠에서 무제타로 무대에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함께 입장하니 그 자체만으로 한없이 아름답고 애절한 <꽃노래>와 <그대의 찬손> 등의 주옥같은 아리아에선 하품만 연실 해대던 앞자리의 중년 남자분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객석에서는 잠시 술렁임이 일었다. 김순영은 성녀다운 순수함으로 손만 닿아도 꺾어질 절벽 위의 한 송이 꽃같이 미미라는 배역과 성격에 부합되는 발성과 음색으로 라보엠의 진가를 알려주었다. 다만 1막 마지막 <오 사랑스런 아가씨>에서의 로돌포와의 조합은 다시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카르멘에서 <세비아의 성벽 근처에>에 이은 기악으로 더 자주 연주되고 슈퍼밴드에서도 나온 피아졸라의 <나는 마리아>는 메조소프라노 김순희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선곡이다. 치열한 연구가 밑받침된 불어(그리고 2부의 스페인어까지)에 아르헨티나 뒷골목의 밀롱가가 흐르는 도도하면서도 저돌적인 눈빛과 저음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지만 김순희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비해 곡들이 너무 매니악하기 때문에 더욱더 큰 시장에서 활개를 치지 못한다. 2부의 지킬 앤 하이드에도 나와 루시의 <Bring on the Man>을 불렀다던가 셜리 베시의 <Goldfinger>를 부른다면 빌리 아일리쉬 같은 잠재력을 가진 김순희는 좁디좁은 오페라 & 성악계의 초월,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고 대중들에게 자신을 확실하게 각인시켰을 텐데 말이다.

성악가들의 도열: 커튼콜

김순영이든 김순희든 류성녀든 무대에 서는 디바는 확실한 자기만의 캐릭터와 브랜드가 있어야 함을 증명하였다. 관객들도 오페라에서는 뭔가 재미있고 같이 동참하고픈데 뭔지 몰라 호응을 하지 못하는 블랙 코미디만 영원히 쳇바퀴 굴리듯이 반복된다. 이들이 그래서 오늘의 음악회를 통해 오페라를 알고 내용을 숙지하고 음악에 대해 느끼고 극장에 가서 카르멘과 라보엠을 고액을 주고 볼 거라는 기대는 이제는 깨자. 그랬다면 예나 지금이나 오페라가 트로트보다 더 인기를 끌고 성행했어야 하는데 왜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겠는가. 1부와 2부의 박수갈채의 농도가 다르다. 1부가 곡이 끝나니 이끌려서 나온 박수라면 2부는 자발적이다. 2부에 한국 노래가 두 개가 끼어있었다. 김효근과 김동률이다. 한국 가곡과 가요 같은 장르의 구분은 이제 무의미한 논쟁이다. 마이크를 사용해서 부른 한국가사에 트렌디한 편곡의 오케스트라 반주로 된 노래다. 다만 오페라와 뮤지컬 사이에 삽입되어 좀 생뚱 맞긴 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니 가수가 가장 잘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한국 가곡 무대에서 앙코르 시 단체로 성악가들이 도열해 브린디쉬(축배를 노래)를 부르는 것과 무슨 다른 점이 있겠는가!

확실한 건 팬텀의 실체는 마이크에 대고 뮤지컬을 부른 2부에서 제대로 알 수 있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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