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용원 음악통신 459] 리뷰: 월드비전 합창단 2021 정기연주회 모차르트 '레퀴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8.11 09: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롯데콘서트홀에 갈 일이 있으면 가급적 일찍 도착해 석촌호수를 산책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석촌호수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선곡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오늘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에 베르디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 심지어 바그너의 발퀴레 3막 전주곡까지 유럽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가리지 않고 다 나왔다. 화룡점정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다. 도대체 알고나 트는 걸까? 말복 저녁 석촌호수를 돌면서 듣는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진혼곡과 무지막지한 발퀴레의 비행이라...

월드비전 합창단 2021 정기연주회 모차르트 레퀴엠

기성세대에게는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월드비전합창단은 1960년 창립 이래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 어린이 구호 사명을 음악을 통한 목소리로 봉헌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전문 어린이 합창단으로 지구촌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래하고 있다. 현 시국만큼 지구촌 아이들, 아니 인류를 위해 노래하고 안전을 간절히 염원하던 때가 있었을까? 온 인류를 위협하고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으로 절망과 신음에 빠진 지구촌 인간들에게 음악으로 구원과 희망을 선사하는 천사들인 월드비전합창단이 올해 정기연주회를 위해 선택한 곡은 모차르트의 최후의 작품이자 라틴어로 '안식'이란 의미의 <레퀴엠>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입장한 합창단원들, 마스크를 쓰고 불러야 하는 노래, 현시대의 단면이다. 무대에 오른 자들 중 악보를 손에 쥐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월드비전합창단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색 상의를 입은 월드비전 합창단 단원들이다. 그들이 어쩌면 그들의 나이와 역량에는 버거울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는 가사를 부른다. 남자 어른들이 함께 한다. 광명시립합창단 단원들이 병풍처럼 그들을 호위한다. 비롯 어린이 합창단의 인원수가 성인 남성들에 비해 2배가 많다 하더라도 어른과 어린이의 음량과 성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빨간색이 밀린다. 관현악단 역시 합창단원들의 수에 안배를 맞춘 인원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의 연주회에서 합창 안에서, 합창과 관현악의 밸런스와 균형에 감상 포인트를 맞추지 않았다.

진혼곡 듣고 기립박수 치고 브라보를 외치는 관객들

유일하게 음악적 밸런스와 소리의 질감, 텍스처의 결합 등 연주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맞춰 평가할 수 있는 파트는 4명의 솔리스트였다. '놀라운 나팔소리'(Tuba mirum spargens sonum)에서 베이스 안대현의 오라토리오와 종교곡에 제격인 깊고도 중후한 음색에 겉모습만 보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미성의 테너 박승주, 탄탄한 음질의 알토 소라(생소한 이름이다. 본명 아님 예명인지?) 그리고 탄력 있으면서 소리를 띄울 줄 아는 소프라노 김가은의 앙상블은 인성으로 짜인 다성부적인 요소의 매력을 여실히 체험할 수 있었다. 부속가의 '기억하소서'(Recordare)에서의 까다로운 장2도 음정의 조합, 곡의 중간부에서 순차적으로 출현하여 동형진행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Domine Jesu)에서 4명의 솔리스텐이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이었다.

솔리스트 4명, 좌로부터 소프라노 김가은, 알토 소라, 테너 박승주 그리고 베이스 안대현

무엇보다 이런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듣는 모차르트 레퀴엠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상술하였듯이 음악적 뉘앙스와 완성도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평하려고 음악회장을 찾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레퀴엠 하나만 딸랑 떼어내서 평을 한다는 건 음악회 방문 목적과도 맞지 않고 평이 지향하는 바도 아니다. 단언컨대 오늘의 연주보다 완성도가 높고 감동을 받은 뛰어난 연주들, 종교음악의 거장들이 유럽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작은 시골 교회에서의 열연과 비교할 순 없었다.(그중엔 지휘자 김보미가 학위를 취득한 레겐스부르크에서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오늘 월드비전 단원들이 만인의 왕 하나님을 외치며 구원을 갈망한 Rex와 코로나와 무더위, 자연재해, 이상 기온, 인간들의 번민과 갈등 악다구니가 없는 오직 한 분의 영광으로만 가득한 Sanctus에서의 지축을 흔드는 울림과 Lacrimosa에서의 피눈물이 흐르는 단장의 슬픔과 눈물로 현실도피하고 위로받고 싶고 음악과 영생에 빠진 적은 없었던 거 같다. 역대 어느 기라성 같은 모차르트 레퀴엠보다 더욱 와닿은 나를 위한 노래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메시지였다. 희망의 목소리(Voice of Hope)였고 모차르트 레퀴엠 50분 동안만큼은 영혼의 안식이자 진심 어린 위안의 시간이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