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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17

윤한로 시인
  • 입력 2021.08.0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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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어디 가, 성님

간만이구나

 

요한이가 길바닥에 동화책이랍시고

몇 묶음 내다놓고 팔길래

뭐랄까? 할매들 시장 모퉁이에 쑥갓이니

시금치 나부랭이니 팔드키

 

쓰라구

만 원을 주자니 성인 같고

천 원을 주자니 시인 같아 보이고

얼마를 줘야 하나

오천 원을 주고 나니

내 맘 다 비운 것 같구나

 

일전에 개천 공공근로에 나갔다간

왜 또 유리조각을 밟아 다치지 않았다냐

 

비록 남들보다 덜떨어지지만서도

전례도 하고 복사도 서고 지역에 방범도 나가고

출석률 하나만큼은 백 퍼센트라! 요한이,

 

웬만한 인간들

한 트럭보다 훨씬 나아

 

가끔 여자가 그리운지

이 누님 저 누님

일요일이면 자전거 타고 여의도 가자데

 

 


시작 메모
요한이는 엄청 똑똑했는데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부터 뇌에 장애를 겪고 있다. 그러나 뇌 쪽만 그렇지 남들보다 봉사도 잘해 족구도 잘해 노래에 춤도 잘 추고 특히 두 배 세 배는 기도도 잘한다. 마흔도 훌쩍 넘었는데 부모님은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집 재산은 없고 장가가기란 어렵겠다. 길바닥에서 동화책이랍시고 팔고 앉았는 요한이를 볼 때면 영리하고 똑똑하고 약삭빠르고 히히덕거리기까지, 이런 게가 너무 역겹다. 그리하여 내 기도는 요한이 같은 사람들 앞에 최대한 겸손해지는 것이다, 비굴해지는 것이다, 다른 눔들한테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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