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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인 김문영의 두 번째 시집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8.0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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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모두의 승리를 기원하는 살아 있는 구황의 시

김문영은 1980년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주항쟁, 1987년 6·10 민주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온몸으로 맞닥트린 현실 참여자였고 1990년대 중반까지 기자 생활을 한 언론인이다. 1991년 문화일보 창간 멤버로 메이저 언론에 투신한 김문영은 그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레저, 그중에서도 경마에 집중해 종합일간지 최초로 매주 2면씩 경마를 고정면으로 다뤄 선풍적인 인기를 끈 1세대 전문기자이다. IMF 때는 과감히 신문사를 박차고 나와 <한국경마신문사>를 설립하면서 대한민국 생활문화의 변화와 미래를 미리 내다본 프런티어이자 대한민국 역사의 순간순간에 몸소 앞장서고 변혁을 부르짖은 행동가였다. 진실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2019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생애 첫 시집인 ‘비시시첩比詩詩帖, 촛불의 꿈(다시문학, 2019)’을 출간하면서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그런 그를 미증유의 코로나가 덮쳤다. 코로나라는 역병을 맞아 인류 전체가 기약 없는 고통의 소용돌이 빠져들었다. 경마가 1년 넘게 중단되면서 그가 대표로 있는 말산업관련 언론사의 운영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말산업이 멸종되고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미 극복할 수 없는 기아와 도산에 무릎 꿇었다. 눈물을 머금으면서 자식 같은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고 늘 북적이던 데스크는 적막만 흐른다.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급급하고 치열하게 버티고 있는 와중에 무슨 한가롭게 시집이라니..

시인 김문영의 두 번째 시집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
시인 김문영의 두 번째 시집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비시(比詩)’ 즉, 깊은 은유와 비유의 산물이 시어 대신 일상의 억누르지 않은 감정이 정제되지 못한 상투적인 용어로 마구 분출된다. 현학적이고 가식적이지 않다. 일상과 자연, 삶에서 소재를 찾아 읊는다. 시집을 펼치고 어느 대목이라도 읽으면 마치 같이 동고동락하듯 충북의 아들, 청풍명월 촌부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세련되고 화려한 문장이 아닌 투박하긴 하지만 격동의 세월을 관통하면서 이 땅을 지키고 살아온 작은 거인이요, 아버지, 가장의 자부심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본인의 종사업인 말산업 재개를 위해 투쟁에 나선 시인 김문영

<빼앗긴 일상에도 오는 밤>은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괴를 같이 하며 일제강점기 대신 2020년의 코로나라는 현 상황을 강렬한 어조로 그려나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치 앞도 모르는 암울한 시기지만 봄이 오듯 희망이 꿈틀댄다. <아 민주주의여! 미얀마 국민이여!>는 총칼에 맞서 짱돌을 던지며 대항했던 20대 투사로 돌아간다. 민주주의는 피땀 없이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위대한 진리를 다시 상기시킨다. 앞장서서 민주주의를 이루고 지킨 김문영이었기에 외침의 메아리가 더욱 깊다. 계속 정의에 대하여, 현 시국에 대하여 격정과 울분을 토로하는 가운데 갑자기 꽃 한 송이가 수줍은 듯이 끼어있다. 눈을 와짝 뜨지 않았더라면 <꽃>이라는 서정시를 놓치고 지나가버렸을 터..... 나도 몰래 다시 돌아보면서 미소를 띠게 만든다. 여기에 <산촌의 감자>는 첫 번째 시집에 수록되어 가곡의 가사로 까진 쓰인 <고구마를 캐면서>와 짝을 이룬다. 이번엔 고구마 대신 감자다. 땅에 뿌리박고 자라는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질기기만 하다.

김문영의 팬들이 시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인 김문영의 팬들이 시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집을 덮고 나면 이 시집 한 권이 어떤 구황작물보다도 더한 우리네 일용할 양식임을 깨닫게 된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편협한 속내가 아니다. 그저 쉼 없이 낮은 곳 더 낮은 곳을 향하여 참고 견디고 나아가면서 지금의 산 같은 고통을 가슴에 안고 흐느끼면서 어금니 꽉 물고 이겨내자는 결의를 심어준다. 시집의 제목처럼 모두의 승리를 위해 뚜벅뚜벅 묵묵히 황소처럼 가자는 코로나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가슴 찐하게 새겨준다. 일상은 반드시 돌아온다. 나중에 남는 이야깃거리는 주로 고생담이다. 다시 하라면 절대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기억들 말이다. 언젠가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있었지 하면서 웃을 날까지, 물론 그 웃음은 그때를 무사히 김문영의 시집 덕에 견뎌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혹독한 세한(歲寒)을 지나 평안(平安)을 누리는 날까지 김문영의 시집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는 모두와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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