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용원 음악통신 445] 리뷰: 오페라정원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6.13 09:00
  • 수정 2021.06.13 09: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 12일 토요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시대와 나라를 넘어 오랜 기간에 걸쳐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으면서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인 스테디셀러는 엄연히 사는 사람이 있으니 팔리는 거다. 그럼 클래식 음악의 스테디셀러는 뭘까? 공급자 위주의 일방적인 제공이 아닌 애호가들이 직접 구매하고 좋아하는 곡들 말이다. 비발디의 <사계>?, 쇼팽의 <녹턴>? 멘델스존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등이 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그럼 인성음악에서는? 오페라 아리아든 가곡이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듣고 따라 불러야지 존재 이유가 있다. 몇몇만이 알아듣고 이해하고 부르면서 평가한다면 그걸 지켜봐야 하는 것도 곤욕이다.

6월 12일 토요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브랜드 콘서트,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6월 12일 토요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브랜드 콘서트,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200년 전의 영화가 오페라다. 그래서 영화를 보던 뮤지컬을 보든 오페라를 보든 상연하는 곳은 공통적으로 극장이라 칭한다. 여기서 질문! 옛날 영화 좋아하고 자주 감상하세요? 007 마니아인 필자는 숀 코네리가 주연했던 제1대 제임스 본드 영화를 대사를 외울 만큼 보고 또 보고 지금도 잊을만하면 다시 꺼내 보면서 즐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는 몇 년 만 지나면 그렇게 촌스럽고 구식이게 보이고 외면하는데 200년 전 우리나라도 아닌 타국 이탈리아에서 나온 이탈리아어로 되어있는 과거의 영화를 누가 즐겨볼까? 그래도 볼 이유는 쌓이고 쌓였다. 그중 하나가 누가 출연하냐는 거다. 만약 고인이 된 숀 코네리 대신 요즘 잘나가는 배우가 과거의 007 <위기일발>을 현대식으로 리메이크한다면 어떨까? 구미가 당기는가?

노이오페라코러스(단장: 박용규)
노이오페라코러스(단장: 박용규)

오늘의 <사랑의 묘약>이 그랬다. 2월 코리안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으로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 지휘자 홍석원이 성남시향을 이끌고 오케스트라를 맡으며 작년 겨울 부인인 피아니스트 김은진과 함께 독일 가곡의 정수를 들려준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전곡의 바리톤 안대현이 벨꼬네로 출연한다고 하니 서울에서 이매역까지 지하철로 가서 이매역에서 2000보를 걸어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 올라갔다. 그 정도의 발품과 성의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건 약과다.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 보러, 팀을 응원하러 휴가 내서 지방 원정까지 가는 사람도 많은데 클래식 공연은 그 정도 부심도 못 부리는가! 왜? 꼭 클래식에서만?

아디나 역의 소프라노 김유미

오페라 정원이든 해설이 있는 오페라든 오페라 누오보든 누가 기획하고 추진하냐에 따라 명칭만 다른 유사 상품이 오페라 생산자들 사이에서만 우후죽순, 무한정 보급된다. 주최자들인 성악인들에 의해 어떻게라도 보급되고 팬을 확보하기 위해 별의별 시도를 다 해보아도 일회성, 단발성에 그친다. 오늘의 <사랑의 묘약>도 얼추 30번은 보았는데 볼 때마다 다른 출연진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아디나든 네모리노든 다양한 성악가들로 듣는 건 큰 즐거움이자 공연예술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니... 그런데 관객층이 확산이 안된다. 일 년에 적어도 1~2번을 보는 <사랑의 묘약>에서 무대 위의 출연진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순수 회전문 관객이 과연 존재할까? 그러니 그들에게 할 때마다 새롭고 처음 보는 거고 그때 한번 단순 체험하고 그만이다. 지속이 안되고 보급이 안된다. 그래서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클래식 음악의 대중성 확보는 요원하다는 점이다.

노이오페라코러스(단장: 박용규)
벨꼬레 역의 바리톤 안대현

하나에 꽂히면 우직하게 몰입하는 유형의 사람인 필자의 지인 중 한 명도 <사랑의 묘약>을 봤다. 필자가 권유했고 필자를 통해 알게 된 소프라노가 주연을 했고 그와 가까운 사람이 해설가로 나섰다. 그래서 갔다. 그리고 끝이다. 그와 다른 뮤지컬을 보러 갔다. 환경과 조건은 비슷하다. 지인 출연. 허나 가서 자발적으로 웃고 즐기고 재미있어하더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뮤지컬의 단골 팬이 되더니 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전도하여 자신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며 초대하더이다. 뮤지컬에 출연했던 테너는 성악전공자다.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고 이탈리아에 유학을 다녀온 부부 성악가이자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아무도 잠들지 마라>를 18번으로 부를 정도의 실력파다. 그가 몇십 년간 부른 성악보다 뮤지컬 한편에 출연하여 생긴 팬이 더 많아져 공연이 끝난지 세월이 어느 정도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들을 공유하며 즐거워하고 소통하고 있다. 오페라 했을 때는 누리지 못한 광경이다.

네모리노 역의 테너 민현기

복잡하지 않은 플롯을 가지고도 쉽게 이해시키고 풀 수 있는 게 오페라의 묘미라고 하는데 정작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사랑의 묘약>의 작곡가 도니체티가 아니다. 음악보다 내용이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고 호응하는 대목은 약장수 둘까마라가 등장해서 홍석원에게 사랑의 묘약이란 병을 주는 대목이었다.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서커스적인 요소와 퍼포먼스에 열광하고 환호하며 도니체티의 음악은 합창과 더불어 그런 선동적인 요소와 흥분성을 갖췄기 때문에 분위기를 유도한다. 하지만 도니체티 아니고 다른 어떤 작곡가라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음악을 붙였다면 그저 덮어놓고 한번 보고 뒤돌아서면 잊고 만다. 그러니 오페라는 할 때마다 모객이 힘들다.

홍석원의 지휘와 성남시립교향악단
홍석원의 지휘와 성남시립교향악단

사랑의 묘약이 아니라 문화의 묘약이 필요하다. 둘까마라가 아니라 봉이 김선달이 절실하다. 비타500이든 구론산 바몬드든 정말 마시고만 나면 클래식 음악이 들리고 좋아하고 성악가가 가사를 씹든 빼먹든 틀리든 알아들었으면 좋겠고 잘 부르면 뜨거운 환호를, 음정이 틀리고 기대에 못 미치면 휘파람도 불고 우~하는 소리도 같이 질러내면서 동질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왜 2층에서 트럼펫의 팡파르가 들리고 호른의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마을 주민들로 분장한 합창단 단원들이 무대로 뛰어나오는지 알았으면 좋겠고 오케스트라의 어떤 부분이 실수를 하였는지 같이 속속들이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묘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도니체티는 오십년을 살면서 <사랑의 묘약>을 2주 만에 속필로 완성한 것처럼 오페라 70편을 쓰고(실질적으로 유년기와 말년을 제외하고 30년 정도 활동하면서) 프랑스 파리에서는 시내의 극장 4곳에서 동시에 도니체티의 작품이 상연될 정도의(지금으로 따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 메가박스, CGV 등에서 도니체티의 다른 영화 4편이 동시에 상영되고 있는 격이다) 인기몰이를 한 당대의 히트곡 제조기이자 흥행사였다. 대중들의 호응이 없었다면 그게 가능했겠는가? 정말 판도라의 상자가 한국에서 열린 셈이다.

우리를 구제해줄 사랑의 묘약, 아니 문화의 묘약!
우리를 구제해줄 사랑의 묘약, 아니 문화의 묘약!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