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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시인 릴케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1.06.07 23:01
  • 수정 2022.07.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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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그 사랑의 이름

릴케와 루 살로메(사진=네이버 갈무리)
릴케와 루 살로메(사진=네이버 갈무리)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1875년 12월 4일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지만 독일 국적이며, 1926년 12월 29일 스위스 요양원에서 백혈병과 패혈증 합병증으로 의사의 팔에서 눈을 뜨고 사망한다. 의사 말로는 죽음을 너무나 두려워했다고 한다. 어느 글에서 장미의 시인이니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신화를 만든 거고 그냥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원래 백혈병은 가지고 있었고 연인에게 장미꽃을 따 주다 가시에 찔렸다. 면역이 약해 균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했으니 직접 사인은 패혈증이다. 신화가 아니라 실제다.

철도 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고위 관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미숙아로 태어났고, 9세 때 부모는 이혼한다. 어머니가 아기 때 죽은 딸을 그리워해 릴케를 소피아라 부르고, 다섯 살까지 원피스를 입히고 여자처럼 길렀다. 뮌헨대학교에서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으나 병약하여 나온다. 삼촌의 법률회사에서도 일했으며, 로댕의 비서를 하고 『로댕론』을 썼다.​

1894년 19세의 나이에 하인리히 하이네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따라한 시집 『삶과 노래들』로 데뷔했다.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등을 쓴 피와 열정의 시인이며 장미의 시인으로 유명하고 괴테 이후 독일 최고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우리에게는 「가을날」이라는 시가 유명하며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이다.

르네라는 이름이 프랑스식 여자 이름 같다는 15세 연상인 사랑하는 여인 루 살로메의 권유로 독일식 이름 라이너로 바꿨다. 라이너가 마리아 이름과 어울려 잘 바꾼 듯하다. 필자는 철학을 전공했고 세부 전공은 니체다. 니체는 루 살로메를 평생 사랑했으나 거절당하고 릴케와는 삼각관계였다. 개인적으로 미운 릴케지만 시는 최고다.

루 살로메는 독일인 후손인 러시아 장군의 5남 1녀 중 외동딸로 어릴 때부터 철학, 역사, 문학을 깊게 교육받았으며, 살로메 나이의 딸을 둔, 스승이었던 유부남 목사의 청혼을 받아 독일로 도망쳐 유명 인사들의 뮤즈가 된다.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고 단아한 외모고 옷도 수수하게 입고 독립적인 성향, 남성성이 강한 굉장히 지적인 여성이다. 니체는 살로메를 알고 난 뒤에 자기와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지성녀라 했다.

​니체, 릴케, 융, 철학교수, 역사학자 등 여러 인사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모든 지식인들이 그녀에게 빠지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라 불렀다. 니체로 인해 지성에 더 눈뜨고 많은 남성을 독신으로 만들었으며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존경했고 말년에는 프로이트의 우정의 후원을 받아 생활하며 자서전도 썼다.

릴케와 세기적인 사랑을 했으며 릴케는 1899년 살로메와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레오 톨스토이를 방문한다. 로댕의 제자 클라라와 결혼해 살로메와 헤어지고 룻이라는 딸을 두었으나 1년 만에 이혼한다. 살로메와 인연은 이어졌으나 결국 릴케의 약간의 비정상적인 정신 문제로 헤어졌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이유로 너무나 천재적이라서 일반 테두리 안에 머물지 못한 니체도 거절한 거라 생각한다. 니체는 실연 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다. 저 책은 한 권 전체가 산문시로 니체 최고의 역작이다. 다른 작가가 쓴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라는 책에는 릴케와 살로메의 사랑이 담겨있다.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는 성경에 나온 말이다. 모두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tinguish My Eyes

Extinguish my eyes

I can see you.

Close my ears

I can hear you.

Without feet I can go to you,

without lips I can still call you.

Break my arms, I will hold you

with my heart as with a single hand,

stop my heart, my brain will beat,

and if you set my brain on fire,

I will carry you in my blood.​

 

내 눈을 감기세요

내 눈을 감기세요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나는 당신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그대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그대를 부를 수 있습니다​

팔이 꺾이면 심장으로 그대를 잡고

심장이 멎으면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뇌를 불 지른다면

그대를 핏속으로 실어나르렵니다​

 

I Am Much Too Alone in This World, Yet Not Alone

 

I am much too alone in this world, yet not alone

enough

to truly consecrate the hour.

I am much too small in this world, yet not small

enough

to be to you just object and thing,

dark and smart.

I want my free will and want it accompanying

the path which leads to action;

and want during times that beg questions,

where something is up,

to be among those in the know,

or else be alone.

I want to mirror your image to its fullest perfection,

never be blind or too old

to uphold your weighty wavering reflection.

I want to unfold.

Nowhere I wish to stay crooked, bent;

for there I would be dishonest, untrue.

I want my conscience to be

true before you;

want to describe myself like a picture I observed

for a long time, one close up,

like a new word I learned and embraced,

like the everday jug,

like my mother's face,

like a ship that carried me along

through the deadliest storm.

세상에 혼자이나 외롭진 않다​

 

세상에 혼자이나, 항상

외롭진 않다

세상에서 하찮지만, 너에게 단지 어리석고 건방진

대상과 물건이 될 만큼 하찮진 않다.

나의 자유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질문을 구하는 동안

무엇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들 사이가 아니면

혼자 있고 싶다

너의 모습 그대로 비추길 바란다

망설여서 어리석거나 현명해 보이지 않게.

나는 드러나길 원한다

어느 곳에서도 부정직하고 거짓되지 않기를

내가 불의하고 거짓될 곳이라도

내 양심이 네 앞에서 진실하길 원하고,

나 자신이 가까이 오래 보아온 그림처럼 그려지길 바란다

내가 배우고 익힌 새로운 단어처럼

매일 쓰는 그릇처럼

내 어머니 얼굴처럼

죽을뻔한 폭풍을 헤치고 나가는 배처럼

Solemn Hour​

 

Whoever now weeps somewhere in the world,

weeps without reason in the world,

weeps over me.

Whoever now laughs somewhere in the night,

laughs without reason in the night,

laughs at me.

Whoever now wanders somewhere in the world,

wanders without reason out in the world,

wanders toward me.

Whoever now dies somewhere in the world,

dies without reason in the world,

looks at me.

 

장엄한 시간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우는 사람은

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며

나를 애통해한다

지금 밤 어딘가에서 웃는 사람은

밤에 이유 없이 웃으며

나에게 웃는다​

 

지금 세상 어디론가 헤매는 사람은

세상에서 이유 없이 헤매며

내게 온다​

 

지금 세상의 어딘가에서 죽는 사람은

세상에서 이유 없이 죽는다.

나를 바라보며​

 

Interior Portrait

Translated by A. Poulin

You don't survive in me

because of memories;

nor are you mine because

of a lovely longing’s strength.

What does make you present

is the ardent detour

that a slow tenderness

traces in my blood.

I do not need

to see you appear;

being born sufficed for me

to lose you a little less.

내면 초상

너는 내게 있지 않다

추억이기에.

나의 것도 아니다

아직도 갈망하니

너를 떠올리려면

내 핏속을

부드럽게

돌아야 한다

 

나는 너를

볼 필요가 없다.

내가 태어난 것만으로도

너를 잃지 않기에 충분하다

첫 시는 루 살로메에게 바친 연작 시 중 하나다. 살로메로 인해 무명이었던 젊은 릴케가 대시인이 될 수 있었다. 필자가 직접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했다. 심장이라 stop 대신 arrest가 어울리나 글자 수를 맞추려 stop을 선택했고, 영번역자들의 should your fire my brain consume, the flowing of my blood will carry you 등을 독일어 원문에 더 맞게 독일어에서 영어로 직접 군더더기 없이 번역했다.

너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한국어 번역도 많은데 독일어는 너를 들을 수 있다로 되어 있어 그것을 따랐다. 손으로 잡듯이란 표현은 시적이지 않아 번역하지 않았다. 나머지 시들은 교육적 차원으로 자원봉사 번역가들이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걸 필자가 한국어로 번역했다. 장미를 누구에게 따주려 했는가 논의가 많다. 귀부인이다 이집트에서 온 연인이다 루 살로메다. 어릴 때 읽은 책에선 어렴풋이 그냥 정원의 장미를 꺾다가 찔린 걸로 알고 있었는데 확실치 않다. 이미 요양원에 있을 상태였는데 연인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세 번째 시에서 whoever를 꼭 누구든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해석하면 너무 모호해져서 특정인 어떤 사람 의미로 해석하는 게 더 동감된다. 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양심, 죄책감이 연상된다. 마지막 시는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이 아내 앤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광대한 우주, 무한한 시간, 앤과 같은 행성 같은 시대에 있어 기쁘다’. 저 시에서도 태어난 것만 해도, 같은 하늘에 있는 것만 해도, 너를 못 봐도 충분하다는 말이 와 닿는다. 정열의 시인이라 피, 뇌 등 원색적인 말을 시어에 많이 쓴다.

세상과 시와 장미를 사랑한 릴케는 「벗을 위한 레퀴엠」 시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연습할 것은 하나뿐,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다. 서로를 붙잡는 것은 쉬운 일이라, 굳이 배울 필요가 없으니.” 라고 했다. 사랑은 놓아주는 거다. 놓아야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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