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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41] 리뷰: 양승희 & 박미희 바이올린 듀오 콘서트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5.31 09:24
  • 수정 2021.06.0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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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커브(Aging Curve)라는 단어가 있다. 보통 운동선수들의 기량을 평가할 때 쓰는 단어로 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어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아무리 젊었을 때 날고 긴 선수라도 20대의 신체적 컨디션이 4~50대 때도 같을 수가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늙어가기 때문에 육체는 퇴보하며 기능이 저하되는 건 당연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나이가 아니라 신체 나이에 따라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고 취약점을 보강하면서 최상의 신체 밸런스를 유지하는 건 운동선수나 연주자나 마찬가지여야한다. 테크닉적인 면만 국한하면 1~20대를 따라잡을 수 없다. 가장 혈기왕성하고 습득률과 회복이 빠르다. 이때 열심히 연마해서 체화된 테크닉으로 연주자들이 평생 풀어먹고 보완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에 맞게,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맞춤형 매트릭스를 짜고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해야 하는 건 헬스장의 운동표나 다이어트 식단과 어찌 보면 똑같다.

좌로부터 피아노 오소진, 바이올리니스트 박미희 그리고 양승희

첫 곡인 르클레어의 소나타부터 슈포어의 1악장까지는 오늘 연주회 레이스의 워밍업 구간이었다. 다소 거칠고 16분음표들은 제어가 되지 않았다. 정교함에서 떨어지고 프레이즈에서의 맺고 끊음이 두 바이올린 주자가 일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슈포어 1악장의 재현부 2주제부터 제1바이올린 양승희에서 유려함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하나로 규합되지 못했던 산만한 전개는 슈포어 1악장을 거쳐 안정을 찾아가더니 2악장 중간 부분에서 서로의 괘도에 오르고 감을 잡고 3악장 주제 도입부에서 만개했다. 3악장 주제의 탄탄함은 인상적이었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음악의 정형미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제 두 눈을 감고 보지 않고 들어도 두 사람의 음색과 스타일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여리지만 다소 날카로우면 양승희고 비올라를 연상케하는 중저음의 묵직한 바리톤은 박미희다. 그 둘의 밸런스 안배가 안정적이었다. 16분 음표보단 확실히 부점이나 6/8박자(특히 비에나프스키 4악장의 살타렐로)에서 덜 미끄러진다.

당연히(???) 2부에선 파트 체인지가 되었다. 프로코피예프에서는 박미희가 제1바이올린을, 양승희가 제2바이올린을 맡았는데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역할에 맞게 음색을 조절할 수 있는 연주자였다.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야성적인 2악장의 개시는 숨겨진 에너지를 발산한 파워풀한 보잉이었으며 박미희의 3악장에서의 고음은 깨끗하고 깔끔했다. 4악장에서 양승희의 Sul tasto 아르페지오에 맞춰 다시 박미희의 청초한 고음을 듣는 것도 묘미였다.

다시 파트가 바뀐 비에나프스키... 1악장은 자신의 왕국이 망하는 걸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백발의 늙은 군주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비극적인 애가(Elegy)가 저돌적이지만 장엄하게 깔린다. 1악장 코다 부분에서 박미희에게 다시 선율이 가고 양승희가 배경으로서 대선율을 깔면서 붉은 노을이 지듯이 마친다.

바이올린 양승희 & 박미희 듀오 콘서트
바이올린 양승희 & 박미희 듀오 콘서트

피아노의 오소진은 단 한 번의 출연이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나타냈다.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오던 오직 2대의 바이올린으로만 펼쳐졌던 단색의 전개에서 피아노가 가미되면서 두 대의 바이올린 독주로만은 채워주지 못한 저음의 베이스를 꽉꽉 들어차면서 스페인 음악의 리듬을 받쳐주었다. 리듬이라기보단 장단이란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민속 색채가 여실히 투영된 호연이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손가락 잘 돌리는 스타성 뛰어난 비르투오소가 넘치는 틈 바구니에서 관록이냐 패기냐 음악적 완성도냐 테크닉이냐 하는 갈림은 항상 균형이라는 정답에 도달한다. 유튜브에 들어가 오늘 연주한 비에나프스키의 4악장이나 크라이슬러의 <프레루디움과 알레그로> 등을 한번 검색해보면 날고뛰는 7살 어린 신동부터 예중예고 재학 중인 팔팔한 테크니션들 넘치고 넘친다. 1974년 서독 월드컵 결승전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인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가 우승했어야 했다는 사람들의 도발에 독일을 우승으로 견인한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이렇게 응수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Der Stark gewinnt nicht, derjenige der gewinnt ist st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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