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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40] 리뷰: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디아뜨소사이어티의 메노티 '전화'와 '영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5.30 11:30
  • 수정 2021.05.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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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8일 토요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메노티의 오페라 두 편 <전화>(The Telephone)와 <영매>(The Medium)를 한 공간에서 연달아 상연했다. 하나의 세트로 2개의 무대를 만들어 경제성과 효용성이 뛰어났다. 블랙박스 형태의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을 십분 활용한 배치다. 흰색의 미니멀한 세트는 출연진의 복식과 조화를 이루며 다용도로 이용된다. <전화>에서의 핸드폰 부스가 2부에서는 대저택의 대문으로 전환된다. 배우들이 사용하는 장비들 역시 최소화되어 있지만 명확한 상징성을 갖는다. <영매>에서의 베일(Veil)은 흰색이고 처음부터 대놓고 토비와 모니카 아역에게 베일을 뒤집어 씌우고 시작하며 복석을 깐다. 샹들리에는 장원의 안방이라는 걸 증명한다. 샹들리에가 흔들리고 불이 꺼질 때 모든 사건들이 벌어진다.

제12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출품작 디아뜨소사이어티의 메노티 오페라 '전화'와 '영매'

메노티는 극장에서 직접 만나는 실연이 아닌 TV 송출을 통한 비대면 음악극 콘텐츠를 선보인 오페라 작곡가다. 기술의 발달은 삶의 양식을 바꾸고 바뀐 양식에 탄력 있고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사회가 요구하는 예술의 역할은 줄어들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오페라는 게 라디오나 TV가 발명되기 전 대규모의 군중이 일정한 시각에 모여 연극, 음악, 춤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형태였다면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생겨 현장 방문 대신 집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편히 즐길 수 있게 되었고 현재는 유튜브와 틱톡 등 비대면 OTT 콘텐츠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와 범람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원하는 걸 감상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속도인지의 변화도 다가온다. 현대인이 느끼는 물리적인 시간의 속도는 오페라의 전성기인 18-19세기보단 몇 배로 빨라졌을 것이다. 현대의 관객들에게 2-3시간을 온건히 투자해가면서 어쿠스틱 악기로만 이루어진 편성의 과거 작품들을 감상하라고 하면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같이 꾸준히 누적되고 축적된 관객층과 전통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선 무리인 게 당연한다. 메노티는 20세기 뉴미디어의 발달과정에서 플랫폼과 매체의 변화에 따른 오페라와 음악 형태의 수용을 보여주는 모범답안인 셈이다.

제목부터 <The Medium>이다. 라틴어 ‘medium'에서부터 파생된 단어로 '중간'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매개체를 의미하는 미디어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다. 미디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에 대중들에게 인쇄물 배포가 가능해졌으며 종이를 통한 대량적인 정보 전달이 가능해진 시기였다. 즉 그전의 구술문화에서 인쇄, 서술 문화로 바뀌는 계기가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팸플릿을 지칭하는 독일어의 “Flugschriften”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날아다니는 책자”라는 뜻이다. 문자뿐만이 아닌 그림 등의 삽입을 현대의 영상물과 기술로 그대로 대체한다면 지금의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다른 현대미디어 개체의 역할과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라디오, 영화 레코드 같은 미디어들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대중문화나 문화산업의 자본주의적 의미로서 신문이나 방송, 음악 서비스 등 여타의 사업이나 특정한 목적을 위한 매체로 인식되는 시초에 메노티가 음악으로 그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한편의 콩트라는 포맷은 21세기에는 사장된 양식이 되어버렸다. 방송에서는 실시간 관찰 예능이 대세고 실시간 버라이어티가 대세다.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유행의 흐름이요 메노티의 시대에 유행했던 미니시리즈, 단편, 잡지 등은 그 당시 대중들의 필요와 요구에 그걸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상부상조했기 때문에 부응했다. 그래서 메노티의 오페라 두 편은 21세기 대한민국의 현 실태에 여러 시사점을 안겨준다.

디아뜨소사이어티의 메노티 오페라 '전화'와 '영매' 5월 29일 토요일 오후 7시 공연 출연진

전반부의 <전화>는 1시간 뒤 먼 곳으로 떠나는 벤이 자신의 여자친구 루시에게 떠나기 전 프러포즈를 하려고 하지만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때문에 도통 틈이 내지 못한다. 벤과 루시의 모습에서 현대인이 그대로 투영된다. 그래서 시공간을 넘어 고전 작품이 통용되고 예술은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남겨준다. 먼데 있는 온라인 친구와는 SNS로 수시로 소통하면서 정작 매일 가까이 있고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 친지 및 주변의 친구들의 근황은 모르고 안부를 묻지 않는다.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가 편하지 얼굴을 맞대고 부대끼는 공동체적 생활방식을 불편해져 버렸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야기된 비대면의 나날이다. 벤이 떠나기 전 이원화로 벤과 루시가 부른 이중창을 특히나 바이올린의 오블리카토가 빛난 우아한 이탈리아 특유의 감미로운 아리아였다. 그러고 나서 떠난다면 콩트로서의 마무리가 어설프다. 벤은 자신의 프러포즈를 방해한 전화를 통해 루시의 목에 항상 걸려있는 전화기를 관통해 자신의 사랑을 전한다. 결국 현대 문명의 이기를 어떻게 사용하냐는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후반부의 <영매>는 희극인 1부와는 전혀 다른 괴기스러운 미스터리다. 과학을 신봉하고 기술 발달을 찬미하는 19세기 말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영매에 유행하였다는 사실은 기술이 발달할수록 영적인 공허함, 불안감이 커진다는 방증이다. 신령 또는 사자(死者)의 뜻을 전달하거나, 심령현상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을 영매라고 지칭하니 상술한 전달자, 즉 미디엄과 일맥상통한다. 벙어리인 토비에게 추긍하니 진실을 알든 모르든 대답을 할 수 없어 정작 토비 본인도 답답했을건데 날라온 건 총알 한방이었다. 그 순간 샹들리에와 무대조명은 붉은색으로 변하고 가장 높은 곳의 4명은 레퀴엠을 부른다. 이런 멍청이들은 결국 우리의 자화상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고 듣고 싶고 알고 싶은것만 원하니까...그렇지 않다면 현대 미디어의 병폐인 거짓뉴스, 선동, 유언비언 등은 발을 붙이지 못할텐데....

봄빛앙상블의 지휘자 전진

소극장 오페라는 음악적인 면보다 스토리와 관객과의 접점이 관건이다. 스텍타클하고 그랜드한 요소보단 작가, 무대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 가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더불어 모두 일체화가 되어 하나로서 각 분야의 전문성을 유지하며 그게 하나로 집결되어 시너지를 창출하는데 소극장이 제격이며 그 매체를 십분 활용한 양수연 연출의 디아트소사이어티와의 만남은 제격이었다. 아쉬운 건 리플렛은 너무 작은 공간에 작은 폰트로 깨알같이 2개의 오페라에 대한 간단한 시놉시스와 연출가의 소개글, 스탭과 출연진 소개에 일정표, 작곡가와 주관단체인 디아뜨소사이어티까지 압축해서 가독성이 떨어졌다. 더군다나 공연의 주체인 연출부터 출연진들의 활동 사항과 소개가 전무해서 궁금함을 자아냈다. 오페라라는게 원래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분량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다음에는 소액을 받고 판매를 하더라도 A4정도의 크기에 6면이라도 용어 그대로 Program Book을 인쇄하길 권장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이 늘면서 더욱더 늘어난 스마트폰 중독과 불확실의 시대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불안한 심정을 파고든 거짓 뉴스와 비과학적인 요소들의 증가... 그 현상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 변화된 양식에 따라 맞춰가려는 고전의 산물 오페라... 연극적 소재, 악기, 시대적 상황 모두 과거와 현대의 공존한다면 현시대 극음악, 오페라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동행할 수 있음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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