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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4

윤한로 시인
  • 입력 2021.05.14 15:41
  • 수정 2021.05.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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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림동
말번지에 살 때 어머니
옷 살 돈마저 없어
문종이로 옷 지었네
희한한 종이옷 한 벌
그리곤 억지로 입혔네
먼저 단추 하나 뜯어지고
사마귀 잡다가 또 하나 뜯어지고
야구하다 팔꿈치 한쪽 떨어지고
곤지란 놈하고 싸우다
바지 다리 한쪽 떨어지고
고새 여우비 오니
남은 팔과 다리, 어깨마저
너덜너덜 누더기가 되었네
그것도 옷이라고
우리 어머니 반나절은 시치고 말라 지은
문종이 옷, 황금 갑옷을 입고 나간 듯
쪽팔렸지

 

 


시작 메모
성경(로마서)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를 읽을 때면 어머니가 지어 준 종이옷이 떠오른다. 빛의 갑옷이란 도대체 얼마나 견고한가. 그 어떤 칼도 창도 뚫을 수 없는, 한없는 겸손과 선행의 감격적 역설적 갑옷이리. 속된 욕망 애집 모욕 수치 다 버린 승리자 성자들만이 걸칠 수 있는 옷이 아닌가. 그런데 어릴 적 순직한 동심을 가난과 챙피로 얼룩지게 했던 우리 어머니 종이옷이야말로 저 빛갑옷 투구 못지않음이니. 아아, 못난 자식에 대한 오종종, 당신 모성애 또한 세월 흘러 흘러 이렇게 황금 갑옷으로 둔갑할 줄. 그러니 자, 이제 함, 뚫어 봐라. 이 세상 온갖 부요와 풍족, 교만과 잘난 체함들이여. 내 갑주 속엔 애틋한 슬픔까지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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